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22 때는 겨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봉헌절은 하누카절, 혹은 빛의 명절이라고 알려진 명절입니다. 이 봉헌절은 안티오쿠스 4세가 유다인 박해를 감행할 때 그 여파로 생겨난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자신의 왕국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가득 찬 안티오쿠스 왕은 유다인을 포함한 모든 수하의 사람들이 희랍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압하였습니다. 안티오쿠스 왕은 유다인들의 제자사와 할례를 금지키시고 기원전 167년에는 성전과 제단을 더럽히고 이교 제단으로 대치시켰습니다. 이것을 파멸의 우상 사건이라고 부릅니다(마카베오 상 1,54-59;다니엘9,27;11,31). 제우스 올림푸스신에게 바치는 첫 번째 제사는 기원전 167년 12월에 행하여졌습니다. 3년 두에 유다 마카베오가 승리하여 성전을 정화하여 새 제단을 세워 성전을 하느님께 다시 봉헌하였습니다(마카베오상 4,36-39). 봉헌절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연례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겨울에 있었던 축제였습니다.
23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 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성전 제일 끝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서 예수님과 유다인 지도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유다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참으로 메시아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였던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때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다윗 가문에서 태어날 왕으로 흔희 상징되었는데, 그 왕은 주님의 도움으로 평화의 계약을 새롭게 맺어 온 세상을 통일시킬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5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26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을 되풀이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맞지 않는 대답을 하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유다인들을 실망시키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도사업에 방해될지 모르는 어떤 소문도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메시아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상은 외국인 억압자들을 전복시킬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구세주의 상이였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하는 메시아상은 유다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윤곽이 잡힙니다. 다윗 왕정시대 초기에는 기름 부음 받은 왕들은 하느님이 백성에게 보내 주신 구세주였습니다. 후에 가서 신통지 않은 왕들이 그들을 다스르게 되자 다윗 왕 같은 왕이 오실 것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배 이후에 다우시 가문이 더 이상 권좌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하기 위해 보내신 가장 위대한 왕을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승리를 거두어 주셨던 것 같이 유다인 역사 안에서도 개입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을 고대하였습니다. 세속적이고 정치적이며 민주적인 색채를 띄우게 된 이러한 메시아의 개념은 항상 그들을 붙어 다녔으며, 이것이 유다인 사고방식 속에 발전되어 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개념이 예수님께서 생존하시던 시대에만 변질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개념의 참된 의미를 찾아 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를 새롭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맛보지 못하였던 새 세상을 소개하려고 몸부림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지 않는 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유다인들에게 아버지와의 일치의 관계를 강조하시며 결론을 지으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시작하신 생명을 주는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아버지가 파견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시고, 심판하고, 생명을 주고, 가르치시는 모든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려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그대로 하실 뿐입니다. 두 분의 활동은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와 예수님과는 어떻습니까? 서로 하나씩 아닙니까? 그리고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가 하나씩은 아닙니까?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고, 함께 예수님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숙제>봉헌절 축제의 의미를 살리면서 마카베오서의 해당되는 말씀들을 읽어 봅시다.
2. 믿지 않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하면서 아직도 질문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3. 내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내 안에 계시니 나는 아버지와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내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직장안에서, 가정안에서, 성당안에서,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