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게 이루어 주겠다


<말씀연구>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예수님, 유다의 배반과 배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당신을 보았으니 이미 아버지도 뵈었다고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러나 토마사도는 아버지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깊은 초자연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벌써 아버지께 대한 인식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인식은 아버지께 대한 인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자녀를 저렇게 아름답게 성장시켰을까?…자녀를 보면 그 안에서 부모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도 알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고 확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필립보 사도가 봉창을 두드립니다.


8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아버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제 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립보는 모세(출애33,18),혹은 이사야서(6장)에도 있었던 그런 하느님에 대한 감각적인 계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하느님의 모습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9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필립보의 청은 아직도 그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필립보의 믿음은 확실했지만 충분치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답답하십니다(내 말이 너무 어려웠나?(내 게그가 너무 어렵나…)….)


하지만 필립보만 그렇게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지금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던 것을 회상시키십니다. 자신이 말씀하실 때는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또 행하실 때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즉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들어서 믿게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그래도 못 믿겠다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게 이루어 주겠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안 들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만사가 순조롭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바란다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잘 기도한다면 그것은 훨씬 순조롭게 되어 갈 것이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아버지와 동시에 직접 예수님께도 이르고 그분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그들의 청을 듣고 또 도우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사도직을 다하기 위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나는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었는지 나의 기도를 들여다 봅시다.




2.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하면 결국 분열되는 것을 많이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일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11.42.85.34 루실라: 신부님! 정말 오늘 말씀 너무 어려워요…예수님께서 차라리 재미나는 게그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으련만…..그건 그렇고 신부님도 주일 기쁘게 보내세요^^ [05/17-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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