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말씀연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선포하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병자를 고쳐 주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7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선포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면서 세례자 요한이 먼저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핵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8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새로운 선교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가르침의 진실성은 ‘기적“이라는 하늘의 도장으로써 증명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초자연적인 위대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까지도 다시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선교한다면 확실하게 믿을 텐데….)
9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10 식량자루나 여벌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사도들은 하늘에서 받은 선물을 이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것이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엣날이나 지금도 팔레스티나인들은 지갑을 허리춤에 넣고 다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생활에 방해가 되고, 혹은 섭리에 대한 불신의 표시가 되는 것들, 혹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험을 내포하는 쓸 데 없는 세속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십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유다인은 속옷을 두 벌씩 입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입는 사람은 앙주 가난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절대적 청빈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열 두 사도들은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대를 이은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탁발 수도회의 수도자라도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빵을 넣기 위한 자루를 가지고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제들이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신자들이 무척 힘들어 할 것입니다. 이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저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바뀔 때 마다 준비해 줘야 하지…
그런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지팡이는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지팡이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지팡이 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 청빈. 지팡이 하나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결코 사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표현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같은 것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슬 데 없는 것을 가지지 말며 섭리의 계획에 신뢰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섭리의 계획에 전적인 신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 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고린9,11-14).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천막 짜는 부업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늘날의 사제들도 신자들에게 피해를 안주기 위해서 뭐 다른 부없을 가져야 할까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까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그냥 웃어 보자고 써봤습니다.)
11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마땅한 사람의 집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3일 정도는 그 집에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람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신앙이 있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앞에서만 그렇게 보이고, 뒤에서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합당한 집을 만나면 그곳에 머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받아들인 주인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떠날 때까지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12 그 집에 들어 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축복한다는 것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란 구약 성서나 탈무드를 보면,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 대단히 넓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나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면 어떻게 축복해 주고, 어떻게 인사하고 있습니까?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기도로 청해 준 사람에게 머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면 그 평화가 기도드린 사라에게로 돌아옵니다.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좋은 행동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평화를 빌어주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평화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소유물은 무엇입니까?
2. 나는 형제 자매들에게 어떻게 인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잘 되도록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형제 자매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는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