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순수한 자선-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관계가 있다든지, 서로 호감이 있는 경우에만 합니다. 모르는 사람과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도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함께 앉기를 꺼려합니다. 직장의 구내 식당에서도 여기 저기서 혼자 먹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영어 회화에 보면 “여기 자리 있습니까? 앉아도 될까요?”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모르는 사람과도 앉아서 얘기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공부하는 외국인들도 이런 표현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밥을 사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밥 사주지 말고 관계가 아직 없는 사람들도 끼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주지 못할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매일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들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일 수도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일 수도 없고, 사랑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미워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가 안 하면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순수한 자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그러고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당신이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당신 친구들이나 형제들이나 친척들이나 부유한 이웃들을 부르지 마시오. 그러면 그들도 당신을 초대하여 갚을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모든 이기심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내가 이정도 해 주었으니 다음에 뭘 부탁해도 들어주겠지” “이 사람이랑 친해지면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유혹이라는 것. 참으로 교묘하게 파고 들어옵니다. 있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음식, 좋은 술을 대접해야 된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 말씀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 사람이 부하 직원들에게 “난 이런 술이 참 좋더라구”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술을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사람들은 그 수준에 맞춰 주더라구!” 그런데 그게 선물일까요? 뇌물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친구나 부자를 초대하는 것은 세속에서 흔한 예절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해 준 만큼 보상을 받게 되겠지만 하느님께로부터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13 당신이 연회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불구자들, 절름발이들, 소경들을 초대하시오.
14 그러면 당신은 복될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당신에게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베푼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들은 사랑을 받았지만 물질적으로는 다시 되돌려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흐뭇해하시며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친한 사람들, 있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이 미움을 초월하고, 개인적인 이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함께 식사하고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도 식사하십니까?
2. 다른 이들로부터 접대성의 식사나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그리고 내가 접대를 했다면 접대할 때의 내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