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이의 비유

 

씨 뿌리는 이의 비유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 하면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아들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 말에는 비유와 비유 이야기를 엄격하게 구별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말이나 라틴말에서는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알레고리아(Allegoria)는 비유, 파라볼라(parabola)는 비유 이야기로 사용됩니다.


알레고리아는 어떤 것의 성질을 가르치기 위하여 더 잘 알려진 것과 비교하여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말입니다.


비유 이야기는 자연계의 사물의 성질 또는 현상을 묘사하여, 도덕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사실을 가르치는 이야기 입니다. 곧 씨 뿌리는 비유 이야기는 밭에 뿌린 씨가 땅의 상태 곧 그 비옥도에 따라 성장을 달리하듯이, 하느님께서 뿌린 생명의 말씀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남을 가르칩니다.


비유 이야기가 가르치는 진리를 알아듣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과 말의 비슷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물의 발전과 결과에 있는 전체적인 비슷함입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셨다. 군중이 너무나 많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그 안에 앉으신 다음 배를 물에 띄웠다. 그리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에 그대로 서있었다.  2  예수께서는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 싸여 호숫가에 계십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고 사람들은 호숫가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농경 사회에서 그들에게 그만큼 쉬운 이야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농사법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팔레스티나의 농사법을 좀 살펴봅시다. 갈릴래아에서는 밭을 따라 돌투성이의 좁은 길이 있고, 또 자주 밭을 가로질러 저쪽 밭으로 가는 작은 고랑이 나 있습니다. 땅의 비옥도도 다릅니다. 흙이 깊은 땅 옆에는 큰 바위를 덮을까 말까한 얕은 양의 흙이 있고, 다른 곳에는 베어 내거나 불에 태운 가시덤불의 뿌리가 아직 살아 있어서 계절이 되면 무성해지는 땅이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씨를 뿌리고 난 후에야 땅을 가는 식으로 해서 씨앗을 땅에 갈아 묻었습니다. 이러한 농사법은 이 말씀에서 묘사된 씨앗의 운명을 설명해 줍니다.


가을철 우기가 끝나고 이제 11월 중순에서 12월 사이에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허리춤에 주머니를 달고 씨를 넣고 다니거나 의복 주머니에 씨를 넣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채 일구지 않은 밭으로 나가 씨를 뿌리고 난 다음, 쟁기질을 하여 씨가 땅에 묻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는 사람은 씨를 다 뿌리고 나면 길바닥이라 할지라도 다시 일구게 될 것이므로 씨가 어디에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4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고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 버렸다.1)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


그 사람이 뿌린 씨는 “그 사람 자신의 씨”였습니다. 씨에는 그 사람의 삶과 운명의 한 요소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씨의 운명은 그 씨가 떨어진 땅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밭이 묵혀 둔 채 있는 동안 그 밭에는 많은 길이 나곤했습니다. 흙이 별로 없이 석회석만 깔려 있기도 했고, 가시덤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도 많았습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바위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어떤 씨는 기름진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보면 4분의 1만이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농부의 수고는 실패가 아닙니다. 백배의 열매를 맺은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  예수께서는 이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셨지만 그 의미를 알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다른 이의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그들 중에 어른이었기 때문에 권위 있게 말을 했습니다.


“요즘 이런 이야기들이 들리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한 사람이 용기있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 이야기는 당신을 두고 한 이야기 입니다. 왜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당신의 귀는 막아 버리십니까?”


귀를 가진다는 것은 알아듣기 위한 지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귀만 가지고는 모자랍니다. 우상도 귀를 가지고 있지만 듣지를 못하는 것과 같이(시편 115,6), 귀를 사용해서 듣겠다는 소망, 곧 들은 말씀을 잘 파악하려고 하는 노력, 결국 반성하고 생각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열 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의 뜻을 물었다.


제자들은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11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나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의도는 과거에는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예수님 안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사건을 끌어들이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나라의 신비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지식은 인간 스스로의 통찰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제자들은 이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직 부여받지 못했기에 이 비유는 신비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았지만 보지 못하고 들었지만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2  그것은 그들이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 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 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껏 그분이 선포해 온 가르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덕적 교훈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문제를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메시아의 인격 문제와 같이, 군중의 편견과 고집 때문에 몹시 다루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군중들은 이스라엘에 독립을 가져다주고 적들에게 원수를 갚는 찬란한 영광에 찬 하느님 왕정의 나타남을 기다리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아가 폭력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뻥 뚫어 놓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싸움과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탈, 벗어남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군중 편에서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상응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유의 목적은 청중의 주의를 집중케 하고, 생각하게 하고, 그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마음 자세를 잘 한 사람은 그 깊은 뜻을 깨달으려고 노력할 것이며, 마침내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착한 결심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소경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 준다.




13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 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비유들을 알아 듣겠느냐?




비유의 뜻은 이렇습니다.


14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씨 뿌리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장하며 활동하고, 이 말씀이 맺게 되는 마지막 결실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 말씀이 그 목적을 달성하여 내 안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생명을 주는 친교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씨와 같은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씨가 열매를 맺느냐 맺지 못하느냐는 토질에 따른 것이므로, 예수님의 말씀도 청중이 지닌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편애도 없고, 사회적 지위의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알맞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15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 속에 뿌려지는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날쌔게 달려드는 사탄에게 그것을 빼앗겨 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듣기는 했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받아들인 사람은 마치 참새가 씨를 쪼아 먹듯 사탄이 그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고 믿음과 구원을 방해합니다. 경박한 정신, 교만한 마음은 진리가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 없게 만듭니다.




16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 들이기는 하지만 17  그 마음 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게 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작은 시련에도 굴복되고 마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신념이 나약하여 작은 시련을 만나게 되면 곧 항복해 버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 안에서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18  그리고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 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 대한 근심, 재물에 대한집착, 쾌락의 추구 때문에 말씀의 씨의 성장과 결실의 모든 희망이 無로 돌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부류는 세상과 하느님과의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인간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인생을 초월하고 이탈하여 하느님께로 달려 갈 용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20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세 가지 조건이 채워질 때에 가장 잘 자라게 됩니다. 먼저 인간의 마음이 착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내 안에 있는 선한 마음은 내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준비하는데 가장 좋은 요소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환영받아야 합니다. 나는 유혹과 위협적인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날마다 끈기 있게 용기를 가지고 꾸준히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또한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유혹의 기회와 싸우는 동안 말씀은 자라납니다. 하지만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그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씨 뿌리는 이의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 밭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길가나 바위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기고, 뿌리 한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비록 길가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의 밭을 갈아 옥토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들으면서 다가오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2. 이 씨 뿌리는 이의 비유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각기 다른 땅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조금이나마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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