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성 알렉산델-생애

 

34. 알렉산드리아의 성 알렉산델




34.1. 생애


알렉산델은 25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으며, 아킬라 주교 밑에서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다가, 312년 아킬라 주교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 알렉산델 주교가 당면한 첫번째 문제는 멜레씨우스 이단이었다. 리꼬폴리스의 주교 멜레씨우스는 박해 때 배교한 신자들에게 참회의 기회를 준 교회의 처사에 반발하여 엄격주의를 표방하면서, 테바이데와 리비아와 펜타폴리스 지역의 주교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총주교좌의 관할권에서 떠나 독립된 자치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알렉산델 주교를 괴롭혔는데, 니체아 공의회(325년)가 위의 지역들이 알렉산드리아 총주교좌의 관할권에 속한다고 확정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성자의 천주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이 318년에 발생하였다. 알렉산델 주교는 먼저 자기 소속 사제인 아리우스의 그릇된 주장을 바로 잡아주기 위하여 자부적(慈父的) 사랑으로 끈질기게 권유해 보았으나 실패하자, 교회의 정통교리를 수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318년에 에집트 지역 주교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에 참석한 100여명의 주교들과 함께 알렉산델은 아리우스와 그의 이단을 추종하는 5명의 사제, 6명의 부제 그리고 2명의 주교를 이단자로 단죄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니꼬데미아로 피신해 가서 니꼬데미아의 에우세비우스와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교회사 학자) 주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단을 계속 전파하였다. 이 문제로 325년에 니체아 공의회가 개최되었으며, 알렉산델 주교는 그의 부제 아타나시우스와 함께 니체아 신경을 초안하고 아리우스 이단을 전교회 차원에서 단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324년에 알렉산델은 자기 총주교좌 관구 내에서 발생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꼴리투스란 사제가 자기 주교와 결별한 다음,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제품과 사제품을 주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주교권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교회의 위계질서를 혼란시키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알렉산델은 즉시 에집트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그를 단죄하였다. 알렉산델은 328년에 선종하였으며, 16년간의 재직기간 동안 여러 이단 사상들에 대항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한 모범적인 사목자였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2월 26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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