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 제 6주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1. 말씀읽기: 요한 14,23-29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것은 일이 아니라 기쁨이기 때문이고, 구속이 아니라 참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로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사랑이 아니라 온 삶으로 고백하는 사랑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 삶을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원하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나눔 및 묵상”은 내 가슴을 움직이는 말씀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며, 함께 하는 이들의 나눔을 통해서 더 깊이 있게 묵상하고, 말씀의 핵심 안으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 할 때,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묵상기도를 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나는 지금 주님의 사랑 안에 어떻게 머물고 있습니까?
③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나는 그 평화를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그 평화를 어떻게 나누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깊이 있게 받아들였다면 그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되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는 결심이 생겨납니다. 무엇을 실천하라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세 가지 정도를 정하고,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정해보는 것입니다. 실천사항은 구체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이것을 하겠다.”고 정해 봅시다.
①
②
③
또한 다음 번 모임 때, 이 실천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서로 이야기 한다면 기쁨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말씀으로 기도하기는 이 과에서 나에게 깊이 있게 와 닿은 말씀을 가지고 이 장의 전체를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비와 은총을 청하고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를 성체 앞에서 바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내가 정한 실천사항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인지를 주님과 이야기 하고,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가슴에 와 닿은 말씀이 가슴에 자리 잡고, 가슴에 자리 잡은 말씀이 나를 이끌 수 있도록 자주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머리로 받아들인 것을 가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그 말씀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묵상기도 없는 성경공부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는 묵상기도로 이어지고, 묵상기도는 내 삶을 주님과 일치시키는 중요한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다해 부활 제 6주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1. 말씀읽기: 요한 14,23-29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것은 일이 아니라 기쁨이기 때문이고, 구속이 아니라 참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로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사랑이 아니라 온 삶으로 고백하는 사랑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 삶을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원하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나눔 및 묵상”은 내 가슴을 움직이는 말씀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며, 함께 하는 이들의 나눔을 통해서 더 깊이 있게 묵상하고, 말씀의 핵심 안으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 할 때,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묵상기도를 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나는 지금 주님의 사랑 안에 어떻게 머물고 있습니까?
③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나는 그 평화를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그 평화를 어떻게 나누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깊이 있게 받아들였다면 그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되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는 결심이 생겨납니다. 무엇을 실천하라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세 가지 정도를 정하고,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정해보는 것입니다. 실천사항은 구체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이것을 하겠다.”고 정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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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음 번 모임 때, 이 실천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서로 이야기 한다면 기쁨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말씀으로 기도하기는 이 과에서 나에게 깊이 있게 와 닿은 말씀을 가지고 이 장의 전체를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비와 은총을 청하고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를 성체 앞에서 바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내가 정한 실천사항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인지를 주님과 이야기 하고,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가슴에 와 닿은 말씀이 가슴에 자리 잡고, 가슴에 자리 잡은 말씀이 나를 이끌 수 있도록 자주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머리로 받아들인 것을 가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그 말씀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묵상기도 없는 성경공부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는 묵상기도로 이어지고, 묵상기도는 내 삶을 주님과 일치시키는 중요한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①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14,23)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타대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유다는 왜 예수님께서 세상과는 거리를 두려 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가 아직 세상 사람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못 알아 뵙는 것입니다. 옆에 계신 주님을 못 알아 뵙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님께 열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가슴에 담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주 작은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14,23)
“난(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귀한 난이라도 그저 풀 한포기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난을 알고, 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마음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성찬의 전례 안에서 빵의 형상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고 가슴 설레며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보고 듣게 되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더욱 다가가려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가가기 위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익히고, 기쁨 속에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는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14,23)
성경에서는 구원을 표현할 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거처하신다(머무신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증을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84,11)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두려울 것 없고, 아쉬울 것 없고, 오로지 기쁨과 즐거움만이 넘쳐나게 됩니다.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14,23)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②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요한14,24)
이제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요한14,24)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 자체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구원과 사랑을 펼치셨지만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요한14,22)라는 유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14,23)
세상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거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신에 쌓여 있는 사람들은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표징을 요구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하여 배반까지도 하게 됩니다. 내 생각을 접지 않으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에 결국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조금 있던 그 사랑이 변해서 결국 차갑게 식어 버렸고, 마침내 예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변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요한14,24)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계명을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당신을 드러내셔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리 가르쳐도 흘려버리고 맙니다. 구원을 주고 싶어도 그들은 구원을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떨까요? 나는 정말로 주님과 함께 하려고 하고 있을까요? 주님의 사랑에 머물고 싶어 할까요? 이것은 내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아가는지를 보면 될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돌아보면 될 것입니다.
③ 성령을 약속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동안에 하느님 아버지를 보여주셨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고, 그 뜻을 몸소 행하셨고, 친히 가르치셨습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요한14,2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제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시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시련과 절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일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성령께서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임을 말씀을 해 주십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14,26)
보호자는 곧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들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가르치신 진리를 되새기게 하고, 그것을 밝게 비추어 주시고, 그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의 보호하심에 의지하여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의 보호 아래에서 성령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게 될 것이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④ 평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14,27)고 말씀을 하십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평화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평화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그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바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수고의 땀을 흘리는 신앙인이 느끼는 평화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이 얻게 되는 평화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 댈 수 있는 신앙인이 가지고 있는 평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주셨고, 그 평화를 간직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과 주님께서는 늘 함께 계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구원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주고 가시는 예수님을 굳게 믿는다면 이제 닥쳐올 수난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14,27)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떠나신다 하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기를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하다가도 한순간에 유혹에 빼앗겨 버리기도 합니다. 작은 근심걱정이 생겨나면 주님보다는 눈앞의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주님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외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없어야 하고, 겁을 내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당당함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 옆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보호자 성령을 약속하시고,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평화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일이 일어날 때에”(요한14,29), 즉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때 제자들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제자들이 생겨났고,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을 때야 비로소 굳은 믿음을 보였고,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때를 위해 이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 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아하!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부활과 승천을 체험하고, 오순절 기도 중에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된 제자들은 성령의 보호하심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도 주님께 대한 사랑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나 까지도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신앙인들은 굳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삶으로 실천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하며 주어진 일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성인들, 순교자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늘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는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