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14,23)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타대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유다는 왜 예수님께서 세상과는 거리를 두려 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가 아직 세상 사람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못 알아 뵙는 것입니다. 옆에 계신 주님을 못 알아 뵙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님께 열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가슴에 담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주 작은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14,23)
“난(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귀한 난이라도 그저 풀 한포기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난을 알고, 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마음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성찬의 전례 안에서 빵의 형상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고 가슴 설레며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보고 듣게 되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더욱 다가가려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가가기 위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익히고, 기쁨 속에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는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14,23)
성경에서는 구원을 표현할 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거처하신다(머무신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증을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84,11)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두려울 것 없고, 아쉬울 것 없고, 오로지 기쁨과 즐거움만이 넘쳐나게 됩니다.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14,23)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