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4/8)


    교회는 2000년 부활 제2주일부터 해마다 이날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이날을 제정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오늘 미사 때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고유 기도를 바치도록 당부하셨다. 오늘 우리는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에페 2,4)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며 찬미를 드린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의 문이 우리에게 열렸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더욱 감사하며, 우리 자신이 주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증인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합시다.
    말씀의 초대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서야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한다. 하지만 보지 않고 믿는 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알렐루야.
    복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받아들이시어,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시고, 이 제사의 힘으로 저희가 한결같이 그리스도께 의탁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토마스는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의 주님이 아닌 바로 자신의 주님이시요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바로 그 누구의 주님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주님이시요 하느님이십니다. 아직도 주님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면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성자의 몸과 피로 힘을 얻었사오니, 주님 자비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더욱 많은 형제들 가운데에서 저희도 주님의 자비를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에서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에서의 믿음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앞 문장에서 사용한 믿음의 의미는 사실 믿음이라기보다는 단지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처럼 실제로 못 자국이 있는 예수님의 손바닥과 상처 난 옆구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서 부활하신 주님을 확인한 경우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인’하였거나 ‘알아차린’것이라고 할 수 있을 따름이지, 결코 믿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식의 결과일 뿐이지 믿음의 결과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에서의 믿음이란 진정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믿음은 감각과 지각의 영역을 넘어선 순수한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때의 부활은 순수한 믿음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날 주님께서 오감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시는 까닭은 우리가 진정한 믿음으로써 당신을 알아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곧, 우리 눈앞에 당신이 나타나시거나 실제로 당신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이미 믿음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인식의 대상으로밖에 주님을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정한 믿음을 통하여 당신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지 않고도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오 나의 자비로우신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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