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26)


    전승에 따르면, 요아킴과 안나 부부는 늦도록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안나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안나는 그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그 아이가 훗날의 성모 마리아였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 이르러서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이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말씀의 초대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무엇을 보고 듣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분의 행적을 직접 듣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비유가 필요 없다. 예언자들은 이러한 세상이 오기를 열망하다 죽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의 정성 어린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복을 저희도 나누어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그들은 주님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느님께 자비를 입으리라.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새로이 나게 하시려고 성자를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이 성찬에서 양식을 배부르게 먹은 주님의 자녀들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끈질긴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여러 차례 식민 생활을 하였지만 결국은 살아남았습니다. 자신을 지배하고 괴롭히던 민족은 사라져도 이스라엘은 굳건히 남아 있습니다. 그 속에는 기다림이라는 힘이 있었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민족이 그들이었습니다.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메시아가 오기를 열망하였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세상은 새롭게 엮이고, 이스라엘은 세상의 통치자로 군림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로마의 지배가 극성을 부릴수록 이러한 열망은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그러한 시점에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입니다. 민중은 그분 안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보고 환호하지만, 지도자들은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무명의 시골 출신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이해되는 판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출신지 나자렛은 예언서의 어디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자렛은 성모님의 고향, 곧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고향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분을 선택하실 때 이미 예수님의 탄생을 섭리하고 계셨습니다. 기다림도 합당한 대상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엉뚱한 목적일 때에는 오히려 추한 것이 되어 외골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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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26)


      전승에 따르면, 요아킴과 안나 부부는 늦도록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안나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안나는 그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그 아이가 훗날의 성모 마리아였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 이르러서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이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말씀의 초대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무엇을 보고 듣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분의 행적을 직접 듣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비유가 필요 없다. 예언자들은 이러한 세상이 오기를 열망하다 죽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의 정성 어린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복을 저희도 나누어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그들은 주님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느님께 자비를 입으리라.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새로이 나게 하시려고 성자를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이 성찬에서 양식을 배부르게 먹은 주님의 자녀들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끈질긴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여러 차례 식민 생활을 하였지만 결국은 살아남았습니다. 자신을 지배하고 괴롭히던 민족은 사라져도 이스라엘은 굳건히 남아 있습니다. 그 속에는 기다림이라는 힘이 있었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민족이 그들이었습니다.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메시아가 오기를 열망하였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세상은 새롭게 엮이고, 이스라엘은 세상의 통치자로 군림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로마의 지배가 극성을 부릴수록 이러한 열망은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그러한 시점에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입니다. 민중은 그분 안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보고 환호하지만, 지도자들은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무명의 시골 출신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이해되는 판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출신지 나자렛은 예언서의 어디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자렛은 성모님의 고향, 곧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고향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분을 선택하실 때 이미 예수님의 탄생을 섭리하고 계셨습니다. 기다림도 합당한 대상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엉뚱한 목적일 때에는 오히려 추한 것이 되어 외골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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