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8/14)


    189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는 청년 시절에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여 1918년 사제가 되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그가 설립한 ‘성모 기사회’라는 신심 단체는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보급되어 있다. 콜베 사제는 한때 선교사로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였다. 고국에 돌아간 그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 때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한 사람이 탈출하자 남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뽑혀 아사 감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억울해 하는 그를 대신해 콜베 성인이 아사 감방을 자원하였다. 성인은 결국 그 감방에서 1941년 8월 14일 운명하였다. 사랑의 순교였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지 못한다고 하신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 된다고 하신다. 어린이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철저하게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말씀이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를 본받아 저희 삶을 주님께 봉헌할 줄 알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 사랑의 불꽃이 저희 안에서도 타오르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다 자란 어른이 어떻게 어린이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른이 어린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말씀처럼, 어린이처럼 될 수는 있습니다. 어린이의 특성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당부는, 어린이처럼 우리도 하느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어린이가 편안하듯이 그러한 느낌과 감정을 하느님 앞에서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살듯이 우리도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 바쁘고 복잡합니다. 잘 사는 것과 바쁘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쁜 사람이 반드시 잘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순한 삶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절제하는 훈련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세상에 외치고 싶어 - 한상일과 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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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8/14)


      189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는 청년 시절에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여 1918년 사제가 되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그가 설립한 ‘성모 기사회’라는 신심 단체는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보급되어 있다. 콜베 사제는 한때 선교사로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였다. 고국에 돌아간 그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 때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한 사람이 탈출하자 남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뽑혀 아사 감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억울해 하는 그를 대신해 콜베 성인이 아사 감방을 자원하였다. 성인은 결국 그 감방에서 1941년 8월 14일 운명하였다. 사랑의 순교였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지 못한다고 하신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 된다고 하신다. 어린이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철저하게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말씀이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를 본받아 저희 삶을 주님께 봉헌할 줄 알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 사랑의 불꽃이 저희 안에서도 타오르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다 자란 어른이 어떻게 어린이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른이 어린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말씀처럼, 어린이처럼 될 수는 있습니다. 어린이의 특성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당부는, 어린이처럼 우리도 하느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어린이가 편안하듯이 그러한 느낌과 감정을 하느님 앞에서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살듯이 우리도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 바쁘고 복잡합니다. 잘 사는 것과 바쁘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쁜 사람이 반드시 잘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순한 삶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절제하는 훈련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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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ser#0 님의 말: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1.말씀읽기:마태18,1-17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마르 9,33-37 ; 루카 9,46-48)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 (마르 9,42-48 ; 루카 17,1-2)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

    되찾은 양의 비유 (루카 15,3-7)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어라 (루카 17,3-3)


    2.말씀연구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내 삶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페러다임의 전환” 말은 쉽지만 사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너무도 어려운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것. 다른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 그 삶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위대한 삶인 것입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위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자장면 3그릇 먹고 공기밥 한그릇 시키는 사람.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마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 복음9,33-34절에서도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잘 라삐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가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학파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랐습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토라와 미슈나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었고, 원로나 순교자라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교회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조직되어 가고 있는 이 단체에 그러한 허영심이 깃들면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빨리 제거해 주십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선택받은 어린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사랑스럽게 감싸시면서 그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셨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신 아이일 수도 있고, 어느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 집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아이가 아닐까요?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철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의 특징어린이의 특징은 여러 가지입니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그리이스 말에는 “생각을 바꾸어라”는 동사에 “변하다, 개심하다”라는 재미있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된 제자는 어린이의 특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계십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해 주는 것은 랍비들이 권장하고 찬양한 선행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을 때, 제자의 신분과 형제애의 정신으로 했을 때,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 법칙입니다. 그런데 유혹이 시작됩니다. 있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보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6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

     방앗간이 없던 당시 가정에서는 두 개의 큰 돌을 겹쳐 놓고 나귀가 돌리는 이 연자맷돌을 쓰고 있었습니다. 목에 맷돌을 단다는 것은 무거운 짐, 무거운 책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맷돌을 목에 걸어 겐네사렛 호수에 던져진 갈릴래야 사람과 나병 환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범죄자의 사형방법의 하나입니다. 수치스러운 사형이었고, 또 무서운 사형이기도 했습니다. 선한 사람을 악으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7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 사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8 네 손이나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두 손이나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불구자나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문자 그래도 해석해서는 안 되지만 지옥에 들어 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러한 굳은 각오와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9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유다인은 특별한 날, 여행, 종교적 예식을 거행하는 경우 등에, 수호천사가 저마다 맡은 사람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좋은 천사와 아울러 사람을 악으로 이끌어 가려는 악마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수호천사가 있어서 지켜주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영혼의 위대함이여,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곧 이를 지키기 위하여 천사가 임명될 정도이다” 이러한 사실만 기억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모신다는 것과 그분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절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유다의 신학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신학에 따르면 가장 고귀한 천사만이 하느님의 존엄을 바라볼 수 있을 뿐, 보통의 천사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잘것없게 취급하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11)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길을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그리스도인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목자를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까지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양 한 마리가 바위틈이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똑같습니다.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냉담 하는 형제를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그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소공동체이든, 본당 구역 공동체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한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데리고 와야 하지만 냉담 하는 사람이나, 신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모임을 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은 바로 냉담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형제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지, 죄악의 유혹과 같이 다른 사람의 탓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길을 잃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길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나 때문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신앙에로 불타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이 말씀 안에는 공동체 안에서의 죄가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라는 것은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연결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형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라고 하시는데 사실 그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고맙다고 하기 보다는 “그래! 네놈은 어디 잘하나 보자!”라고 마음 품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가 돌아서면 형제를 하나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니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그런데 잘못을 범한 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런 방법을 써야 합니다. 구약의 규율에 따르면, 증언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 의하여 확인될 때에야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어떤 나쁜 짓이든 어떤 잘못이든,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증언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고소할 수 있다”(신명19,15). 여기서는 충고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최후의 비상 수단을 연기시키기 위해서 법적인 절차라는 요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라이나 세 사람이 함께 사실을 증언하고 잘못을 범한 형제가 회개하도록 촉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좀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죄인으로 단정하는 것, 그리고 여럿이서 한 사람을 몰아 세우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욥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친구 셋이 찾아와서 욥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욥은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형제에게 다가갈 때 그도 마음을 돌려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몰아세우면 그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끔은 정말 “저 사람이 신앙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다가가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회개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할 마음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온다면 예수님은 맨발로 뛰어나가 그들을 맞아들이십니다. 즉 기다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교회 밖으로 떠났다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회개를 위하여 인내와 친절을 가져야 합니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사도들은 베드로사도와 똑같이 특권(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16,19)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의 차이는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후계자를 갖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를 이어받는 교황은 교황에서 교황으로 그 특권이 이어집니다.


     교회는 맬 수 있을 뿐 아니라 풀 수도, 즉 파문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죄인을 파문한다는 것은 구태여 최종적인 판결로 볼 필요가 없으며 회개하고 다시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가혹한 징계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형제가 구언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회개하기를 바라는 열망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개인의 개인적인잘못과 전체 공동체의 생활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공식적인 교회에 관계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책임의 구분이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한 권고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개인에게 형제적인 충고의 책임이 맡겨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주도록 불려져야 하며, 최종적으로 최고 법정에 호소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비성사적인 활동과 성사적인 활동은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서로 관계를 맺고 질서지어지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하느님이 보시기에 누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형제 자매들의 신앙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 user#0 님의 말: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

    말씀이 저를 두고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당신의 자녀로써……
    당신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당신이 아니라…..
    저 자신을 우선으로…..
    저 자신이 가잘 큰 대접을 받기 원했습니다
    누가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미워하고 더 무시하고….
    그럼에도…..
    언제나 입으로는 겸손한 척 공손한 척…..
    그렇게 살앗습니다
    남을 무시하고 자신만이 대접을 받기 원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는 겸손을 외쳤지만…..
    신앙인은 당신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저의 마음 속에는 저의 머릿 속에는……..
    언제나 제가 우선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

    말씀을 깊이 명심하며
    당신의 자녀로써….
    신앙인으로써….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명심 또 명심하여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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