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8/21)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의 트레비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체부를 겸한 구두 수선공으로서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오랫동안 본당 사목자로 일하다 1884년 만토바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1893년에는 베네치아의 추기경이 되었다. 레오 13세 교황의 뒤를 이어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0세 교황은 무엇보다도 교회법 개정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통하여 교회 쇄신을 꾀하였다. 1914년에 선종한 그는 1954년에 성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시며,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다.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는 재물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위력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너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해졌도다. ◎ 알렐루야.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성 비오 교황의 모범을 따라, 저희가 경건하고 참된 믿음으로 이 신비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아버지, 성 비오 교황의 축일을 지내며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성체의 힘으로 주님을 굳게 믿으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재물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재물의 힘을 하느님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곧 재물이 많은 사람보다 재물의 위력에 굴복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함을 느끼며 삽니다. 만족하며 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저 사람은 부자’라고 할 정도일지라도 본인이 ‘아니다. 나는 늘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이 보기에 가난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본인은 만족하며 산다면 그는 분명 부자인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구원에 이릅니다. 구원은 만족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니 재물이 최고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여기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위에 주님의 능력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백 배의 상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든 내세에서 이루어지든 우리는 그 말씀에 희망을 두며 살 뿐입니다.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분명 부자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Praise to the Lord, the Almighty - St. Philips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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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8/21)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의 트레비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체부를 겸한 구두 수선공으로서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오랫동안 본당 사목자로 일하다 1884년 만토바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1893년에는 베네치아의 추기경이 되었다. 레오 13세 교황의 뒤를 이어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0세 교황은 무엇보다도 교회법 개정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통하여 교회 쇄신을 꾀하였다. 1914년에 선종한 그는 1954년에 성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시며,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다.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는 재물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위력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너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해졌도다. ◎ 알렐루야.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성 비오 교황의 모범을 따라, 저희가 경건하고 참된 믿음으로 이 신비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아버지, 성 비오 교황의 축일을 지내며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성체의 힘으로 주님을 굳게 믿으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재물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재물의 힘을 하느님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곧 재물이 많은 사람보다 재물의 위력에 굴복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함을 느끼며 삽니다. 만족하며 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저 사람은 부자’라고 할 정도일지라도 본인이 ‘아니다. 나는 늘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이 보기에 가난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본인은 만족하며 산다면 그는 분명 부자인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구원에 이릅니다. 구원은 만족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니 재물이 최고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여기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위에 주님의 능력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백 배의 상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든 내세에서 이루어지든 우리는 그 말씀에 희망을 두며 살 뿐입니다.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분명 부자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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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ser#0 님의 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어느 자매님께서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방법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주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씀이……
    그때 자매님의 묵상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도 깨달았지요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그것도 남는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나눌 때 더 소중한 것이라고……
    깨달으며 실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겠다고….
    자신이 아끼는 것을 나누고 남에게 베풀어야 겠다고……..
    신앙인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후…..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그때 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나누기는커녕 여전히 더 갖고 싶고 갖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아왓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실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모든 결심들을
    실천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요즈음 저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이….
    남을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 모든 것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한 이유들이…….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가…….
    세속에 욕심과 이기심 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아무리 복음묵상을 열심히 하고 잘한다해도
    자신의 것을 나누지 못하고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면
    복음을 묵상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 한 것임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세속의 욕심임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교만임을 …..
    깨닫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주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자신이 아끼는 것을 나눌 줄아는 신앙의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아멘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묵상하며

    218.150.125.153 ^^: 바늘 구멍을 넓히는 거유…무지 크게…탱크도 막 지나가게…ㅎㅎ [08/22-09:49]
    218.150.125.153 ^^: 부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이야기는 하는 것도 아니구유..물질적인 부자를 말하는 것도 아뉴..부유하면서 나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디유..가난한 사람의 반대 개념이예요. 하느님만을 바라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구유. 반대로 하느님을 바라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는 사람이 부자예요…..물질은 풍요롭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하느님 곁에 있기에 나눌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나는 탱크와 함께 바늘귀를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08/22-09:51]

  3. user#0 님의 말: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

    1. 말씀읽기:마태19,16-30(마르 10,17-27 ; 루카 18,18-27)(마르 10,28-31 ; 루카 18,28-30)

    2. 말씀연구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진 청년. 그 청년은 참으로 대단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그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마음입니다. 비록 그가 가진 것을 다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래서 오늘은 처진 어깨를 하고 예수님께 돌아섰다 할지라도, 그는 평생 재산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는 그 재산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자청년의 마음이 되어 예수님 앞에 서 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여쭈어 봅시다. 비록 지금 내가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지금 내려놓을 수 없다 할지라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하려고 노력할 때 예수님 보시기 좋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16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이 청년은 예수님께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승과 선생은 다릅니다. 선생님은 전해 받은 것을 공부해서 그것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스승은 전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청년은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아픈 이들에게,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가끔은 그렇게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엇을 해야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가정생활을 잘 하고, 어떻게 해야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어떻게 해야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 뿐이시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서 겸손을 봅니다. 너무도 겸손하셔서 모든 영광을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분은 아버지 한 분 뿐이시기에 아버지 하느님만이 선한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알고 있는 것들,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좀더 겸손해 진다면 깊은 말을 할 수 있고, 자세히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훌륭하다고, 대단하다고” 칭찬할 때,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 나는 더욱 예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스승을 닮은 제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계명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주신 것들이 아닙니다. 인간을 잘 살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잘 살려거든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지키는 일들이 바로 선한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자신이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 묻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지키고 있지만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계명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자 묻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살아가면서 지키기 어려운 계명들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비록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어의 폭력으로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고, 육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죄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며, 나를 합리화시키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처럼 사용하고, 탐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신의 이익과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적당히 거짓말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쉬운 것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계명들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님께서는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말씀하십니다. 부자청년이었기에, 부모에게서 물려받고 풍요로운 사람을 살았기에 이 청년은 부모에 대한 감사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하느님께 대한 의무보다는 이웃에 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즉 예수님의 답변은 예수님께서 지향하고 계시는 목적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을 존경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관해 물어 볼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명백히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다른 것들도 분명하게 인식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가는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있느냐, 사랑하고 있느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앙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청년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인 듯 합니다.


     청년은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이 청년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은 구약성경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신심 깊은 유다인이라면 스스로 그러한 답변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때로는 율법학자들이 그러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참으로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의식은 열심한 히브리인의 마음 안에는 있었습니다. 성실한 랍비들은 항상 율법의 전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랍비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윤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경건한 사람까지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의 의로움 보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는 일반적인 계명을 초월하는 특별한 가르침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계명을 실행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 이상,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지켜야 할 세상으로부터의 이탈뿐만 아니라 완덕을 지향하며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도 토라를 연구하기 위하여 재산을 다 팔아 버린 라삐가 있었고,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한 청빈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숫자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히브리인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남에게 적선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보화를 얻는 것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은 한 평생 적선을 베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재산을 적선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십니다.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일, 모든 자연적인 청빈보다도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결정을 할까요?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는 완전해 지려거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자 청년이 지키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의 재물을 나눠 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는 부자라고 설명되어 있기에 살인이나 도둑질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유혹은 그가 부리고 있는 일꾼들에게 과중한 노동이나 임금의 체불, 노동에 알맞지 않은 임금의 지불 등의 부정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의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렇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것. 분명 어느 누구에게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재물에 집착이 없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있을수록, 많이 가질수록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자청년의 행동은 참으로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나는 가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긍정하는 척 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도 옳은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쉽게 감정을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이 순간만 피하면 되지…하지만 부자 청년은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갈등하면서 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것을 정리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풀이 죽어 떠나간 부자 청년.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슬퍼하면서 떠나갑니다. 많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 완덕의 이상과 선한 예수님께 대한 애정보다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가시와 넝쿨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뿌리신 씨를 덮어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청년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대한 사도가 되지 않았을까요?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재물을 자기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재물이란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떠나 완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지 않는 한 결코 아무도 재물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라면 어느 누구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재물에 집착하는 이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린 다는 것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완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재물에 집착하고 있는지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 재물은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재물은 물질을 넘어서 자신의 고집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직장일 일수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신앙 모임에 못나가요”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이 모두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 나는 구원을 체험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해야 되는 것들과 하지 말아야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 꼭 기억해야 합니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제자들은 당혹감과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말 안에는 자신들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구원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정당하게 구원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오직 물질에만 집착한다면 그가 구원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무자비한 분이 아니십니다. 처음에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왔다고 말씀을 드리니 예수님께서 한 단계 위의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나름대로 다 단계가 있습니다. 유아기에는 이유식을 먹어야 하고, 어른이 된다면 이유식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의 단계를 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해 본다면 각 시기별로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처음 나온 사람에게 묵상기도나 성체조배, 매일미사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분께 아침저녁 기도만을 가르친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참된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서 행동하고, 하느님을 뜻을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하느님은 감독관이나 폭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와 당신의 뜻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을 종이 주인을 두려워하듯 그렇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며, 자신의 몸을 잔혹하게 괴롭혀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 사람들은,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만들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게 만듭니다. 세리였던 자캐오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열렸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모님의 문안을 받고 얼마나 기뻐합니까?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한 반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랐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떠나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약간 이기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재화 대신 줄 상으로서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였으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나름대로 보답이 있을 것임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커다란 것을 약속하십니다. “열 두 옥좌에 앉아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권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보편성을 띤 교회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에 의해 구원을 받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세상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사람의 아들이 오심으로써 시작될 것이며 심판과 더불어 이루어질 세상입니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아 판결을 내리실 것이고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 보좌관으로 앉아 예수님과 함께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 수난과 죽음까지 함께 할 제자들에게 영광의 날을 줄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성당 다닌다고 차례나 제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버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사도들의 시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형제라고 불립니다. 하느님 안에 한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떠나 믿는 신앙의 형제들 품으로 왔을 때 그는 신앙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을 무수히 얻게 됩니다. 또 사랑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에게 풍요한 은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사도11,29-30;갈라2,10;2고린8,1-9,15). 그래서 이들은 세례를 받고 집과 밭도 얻었으며 수많은 형제 자매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축복 속에는 박해도 감수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첫째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마음이 식어서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래서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살아간다면 그들은 구원으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꼴찌는 지금은 죄인이라고 판명받은 사람들입니다. 가난했기에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유다인들에게 율법학자들은 그들이 구원에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도 모르는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하지만 꼴찌라고 생각되던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행실을 고쳤기에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나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나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실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율법학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마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그들이 열두 옥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 왔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열정으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박해하고, 마침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첫째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꼴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재산을 버리라는 말씀 안에서 “내가 가진 기존의 낡은 신앙의 틀, 고정관념, 그리고 교만에 얼룩진 신앙”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직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그런 경험들을 함께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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