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례
오늘 복음은 돌아온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애정이 결국은 그의 삶을 바꾸게 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떠난 이들이
돌아오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믿음은 이러한 하느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말씀의 초대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유산이 있는 한
사람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에게 기꺼이 유산을 내준다.
작은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경험할 때 하느님을 더욱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나 사랑으로 받아 주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굽어 들으시고,
이 예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이 예물이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 하느님, 주님의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나이까!
사람들이 주님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순순히 유산을 내준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흥청망청 재산을 날린 그는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시련이 은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작은아들은 바로 오늘의 우리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지난날 우리의 잘못을 되돌아보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선물의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몸소 차지하시고,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주님 성령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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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9/16)
오늘의 전례
오늘 복음은 돌아온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애정이 결국은 그의 삶을 바꾸게 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떠난 이들이 돌아오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믿음은 이러한 하느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말씀의 초대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유산이 있는 한 사람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에게 기꺼이 유산을 내준다. 작은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경험할 때 하느님을 더욱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나 사랑으로 받아 주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굽어 들으시고, 이 예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이 예물이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 하느님, 주님의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나이까! 사람들이 주님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순순히 유산을 내준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흥청망청 재산을 날린 그는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시련이 은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작은아들은 바로 오늘의 우리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지난날 우리의 잘못을 되돌아보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선물의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몸소 차지하시고,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주님 성령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인간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건강할 때에는 그 고마움을 모르는 채 늘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가진 게 많고 젊을수록 이러한 생각을 뛰어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인생은 허무해집니다. 재물과 젊음이 늘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은총뿐입니다. 혹독한 시련과 함께 오는 은총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전형적인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날린 작은아들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참으로 당돌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녀석아 그게 네 것이냐? 유산을 달라니, 그러면 내가 죽기를 바란다는 말이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으나 아무런 대꾸 없이 유산을 내줍니다. 그리고 유산이 작은아들에게 남아 있는 한, 그가 사람 되기는 힘들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채 흥청망청 유산을 다 날리고 맙니다. 쉽게 얻은 재물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차디찬 세상을 체험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허무와 외로움이 그를 왜소하게 만들고, 절망과 고통이 그를 어린이의 심정으로 되돌려 놓았던 것입니다. 시련이 은총으로 바뀌었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말씀에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깨닫습니다
사실 그동안…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었지만……
당신께서는 저를 정말 사랑하시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는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당신께서는 축복을 주시는 것 같은데…
유독 저한테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드니……
당신께서 저를 정말 사랑하실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맞아요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의 곁에서 계셨지요?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저와 함께 고통을 겪으시고
참고 견디는 세월 또한 많았지요?
그런데 왜 제가 그동안 당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저의 고통만 생각하고 세상에서 저 혼자만 떨어진 것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힘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 이 세상에 뚝 떨어져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과 기쁨은 저에게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란 것이 고작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어떤 때에는 의도적으로
기도를 하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며 봉사도 하지 않고 주일에만 겨우 미사참례하고
그렇게 당신께 반항을 했습니다
제가 당신께 할 수 있는 불효는 모두 골라가며…..
그런데요 주님!
그럴 때마다 저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외로워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저 혼자 세상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무섭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원망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
당신을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습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당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며 저를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살이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당신은 저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아멘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묵상하며
♬ 돌아온 탕자/멀고험한 이세상 길
한없이 기다려 주시는 우리 아버지…
이 죄인 엎디어 비나이다.
말없이 울먹이는 모습만 봐도
제 마음을 아시는 분.
끄덕 끄덕
토닥 토닥
손벌려 안아 주시는
자비로운 우리 아버지…
당신 앞에
이 죄인
가슴을 찟습니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구역형제님께서 고해성사를 보면서
고백할만한 죄가 없다고 했더니 고백신부님께서
하신말씀이 “성인”이라고 하셨다는 말씀이 기억이납니다
그때 저도 그 형제님이 교만하고 믿음이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믿음이 깊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해보니…..
제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죄는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쉽게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사실 저에게는 누구를 평가하고 단죄할 자격이 없는데…..
자신이 죄가 없는 것 같다고 고백하신 형제님은 영세하신지 얼마되지
않아 고해성사의 의미를 몰라서 그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상황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쉽게 판단하고 매도했던
저의 교만과 무지가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말씀에 당신께서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지를 깨닫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시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
그 잃은 양 한 마리가 바로 저라는 생각에
저를 찾아 헤매시는 당신을 생각하니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요 주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가끔 씩 고해소에 들어가면
제가 지은 죄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충 고백을 하곤 합니다
고백신부님께서 보속 또한 아주 쬐끔 주십니다
제가 지은 죄가 별 것아니라는 생각에 그러신 것같습니다
하지만 고백소를 나오면 죄가 생각이 납니다
그것도 대죄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말씀에 용기를 얻으며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한사람의 죄인을 구하시는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당신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치는 신앙인 헬레나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저의 전부를 당신께 봉헌하며
저의 무거운 짊 모두를 당신께 맡기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아멘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묵상하며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1. 말씀읽기: 루카 15,1-10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 18,12-14)
2. 말씀연구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남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내가 바로 죄인이니 하느님께서는 나의 회개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세리들도 있었고,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죄인들은 율법학자들이 보기에 율법을 못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세리는 탐욕과 부정의 대명사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여 로마인들에게 바치고 있으니 역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접촉에 의해서도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에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누구나 받아들여주시고,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해 주십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께로 모여 드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나를 반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이들은 왜 예수님을 비난할까요?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든 사람들을 이미 죄인으로 단정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비유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양을 백 마리나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를, 계곡을 누빕니다. 당시에는 짐승들이 구멍이나 우물에 빠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이 양을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의 주인은 끝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백 마리나 양이 있는 그 부자에게 한 마리 양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리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회개한 죄인이 공덕이 있어서 죄에 빠지지 않았던 의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 합니다.
이 부인이 은전 한 닢을 찾고자 하는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이 여인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잃어버렸던 은전을 찾았기에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하시면서 느끼시는 기쁨이 바로 이런 기쁨입니다. 그들이 바로 잃었던 양이고, 그들이 바로 잃었던 은전입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이웃”(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함께 기뻐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그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2.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길 잃은 양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목자와 동료를 잃어버린 양이고, 길을 떠난 양은 목자와 양의 무리가 싫어서 떠난 양입니다. 신앙 안에서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