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연중 제24주간 수요일(9/19)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말도 믿지 않고 당신도 믿지 않는 백성의 불신을 한탄하고 계신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혜의 모든 자녀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세월은 약이 아니라 마취제일 따름입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낫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는 대부분 처음부터 손쓰지 않으면 더 심해집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사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이 있는가 하면 걱정도 참 많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길입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자식 둔 부모치고 마음 편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부모 역시 자녀 못지않게 매일매일 숨이 가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하느님의 지혜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만큼 참는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의 말도 믿지 않고 당신도 믿지 않았음에도 그분께서는 참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아픔을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상처까지도 그분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Allegri, Gregorio - Miserere mei deus (하느님, 저를 가엾이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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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4주간 수요일(9/19)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말도 믿지 않고 당신도 믿지 않는 백성의 불신을 한탄하고 계신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혜의 모든 자녀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세월은 약이 아니라 마취제일 따름입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낫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는 대부분 처음부터 손쓰지 않으면 더 심해집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사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이 있는가 하면 걱정도 참 많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길입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자식 둔 부모치고 마음 편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부모 역시 자녀 못지않게 매일매일 숨이 가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하느님의 지혜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만큼 참는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의 말도 믿지 않고 당신도 믿지 않았음에도 그분께서는 참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아픔을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상처까지도 그분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Allegri, Gregorio - Miserere mei deus (하느님, 저를 가엾이 여기소서) 
    
    
    
    
    
    

  2. user#0 님의 말: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

    9월 반 모임 날인 오늘 주요안건이
    본당 성전보수기금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역식구 서로가 힘들고 어려워 티켓을 사지 못하겠다며
    불평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그러니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복음말씀도
    읽지 않고 성가도 부르는 둥 마는 둥 ……
    모두들 반장한테 티켓을 사지 못 하겠다는 말들만 ……..

    심지어…
    어느 자매님은 티켓을 사지 않겠다고 구역회도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역회를 나온 사람들도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참 난감하였습니다 속도 상하고 마음도 아프고…..
    신앙인들의 자세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에 우울했습니다

    더욱 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티켓을 판다고 인터넷에 올린다며 돈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 도 하기 어려운 것같고
    기가 죽어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는 냉담하는 형제님이 말씀에
    누구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구역회가 끝나고 집에 오니 반장님이 전화로 성당에 다니기 싫다며 냉담해야 겠다고….
    한 시간동안 위로하고 협박(?)도 하고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며 위로를 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로 하는 것인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말씀이 지혜가 부족한 저에게 깨닫게 해주시려고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을 깨 달을 수 있는 제가 되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말씀 안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해하는 헬레나가 되게 해주십시요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아멘

    211.224.229.214 ^*^: 참 어렵네요..그런데 그분들이 왜 그런지가 빠졌네요..처음 판매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완고하게 나가는 것인지, 매번 그래서 이제는 지쳐서 그런 것인지….성전을 지으면서 신바람난 본당도 있고, 지치는 본당도 있더라구요….좋은 하루 되세요…돈 때문에 성당 안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09/19-09:46]

  3. user#0 님의 말: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1. 말씀읽기:루카 7,31-35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꾸지람을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금욕적인 생활을 보고는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시고 함께 하시니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했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세례자 요한을 비웃고,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멋대로 놀아나는 아이들로 그들을 비유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예수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셔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무딘 마음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꾸지람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놀이를 하려고 거리에 모인 아이들. 저마다 말을 주고받으며 모두 자기 마음에 드는 놀이를 하려고 하나 의견이 맞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결혼식 놀이를 하려 했고 다른 아이들은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했습니다. 한편의 아이들이 피리를 불면서 상대편 아이들에게 춤을 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그냥 있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슬퍼하며 곡을 하였지만 상대편 아이들은 이제 결혼식 놀이를 하려고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집 센 어린이들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친구의 뜻을 받아들여 줄 때 나는 친구와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구원의 길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요구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떻게 했겠습니까? 군중들이 보기에 백성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자신들과 세례자 요한을 비교해 볼 때, 세례자 요한을 더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자 요한을 깎아 내림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치가 보장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마귀가 들렸다고 몰아 붙였던 것입니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사람들의 완고함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비난하는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너무 금욕적이라고 생각하여 미쳤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별로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뿐 아니라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사귀는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유다인들은 요한의 엄격한 생활, 혹은 예수님의 예사로운 생활, 그 어느 쪽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님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가볍다. 신부답지 않다”라고 단정해 버리고, 좀 무게를 잡으면 “거만하다. 저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다가갈 수 있겠는가?”하고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혜를 가진,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즉 인간은 지혜롭게 변화되어야 하고 지혜로 가득 차있어야 하며, 지혜가 생각하고 판단하듯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이 요한을 메시아의 선구자로 알아보면서 예수님께 의심을 품지 않았을 때,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루카10,21)라고 기도하신 이유입니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계시를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을 피우는 그런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말씀에 순명하고, 가식 없이 대하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자녀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께서 옳다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것 만을 고집하고 남의 것은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하다가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당황하게 된 적은 없습니까?



    2. 지혜로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은 나태해 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4. user#0 님의 말:

    * 나눔 및 묵상

    1.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것 만을 고집하고 남의 것은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하다가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당황하게 된 적은 없습니까?

    음…. 그런 일 종종 자행하고 있습지요
    어떤 공동체의 장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관철하려고 들때
    저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게 됩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싫어서 어떻게든 무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은근히 비추기를 좋아하지요….
    그런데 저나 또는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주로 안건들을 후딱
    처리 하는 방식을 사용하더군요.
    어쩜 오늘 바리사이들의 황당함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이없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못마땅한 결정에 대해 함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아야소리 못하고 맙니다.(속으론 길길이 뛰어보지만서두 ㅋㅋ)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어가다 보면 자연이 그 공동체에 참석하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빠질 이유를 찾게 되고 점점 애정이 식어갑니다.
    결국 자신에게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도 못된 성격상, 아니 사랑이 부재한
    소갈딱지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주님께 간절히 청하옵니다
    이 좁은 소갈딱지에게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아니 설사 내 의견보다
    다소 아니구나 싶은 의견에도 보다 너그러운 배려를 보낼 줄 아는 지혜로움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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