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연중 제27주간 월요일(10/8)


    말씀의 초대
    영원한 생명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삶이다. 영원한 생명을 깨달으려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완벽한 모범을 보였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5-37 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예물을 굽어보시고, 성체성사로 신자들에게 성덕을 더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주님의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마련하고, 제비도 제 둥지가 있어, 그곳에 새끼들을 치나이다. 주님의 집에 사는 이들은 행복하리니, 그들은 늘 주님을 찬양하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선물을 받고 비오니, 성체를 자주 모심으로써 저희 구원의 열매가 날로 자라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반쯤 죽게 된 사람을 구해 줍니다. 그는 치료비까지 주고는 말없이 떠나갑니다. 요즈음같이 삭막한 세상에서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을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는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시며 우리더러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서 말씀하실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최고봉을 제시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완벽한 이웃 사랑인지 그 예를 드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한 일은 사랑의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등산을 시작한 사람이 단번에 험하고 높은 산을 오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낮은 산부터 오르내리며 산에 대한 감각을 익혀야 하듯이,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번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은 황새입니다. 남에게 너그러우려면 먼저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 사랑에 눈을 돌릴 수 있습니다. 자신은 부정적으로 보면서 어떻게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Kyrie ix[자비송(9번 미사곡 Cum jubilo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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