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구원과 멸망


1. 말씀읽기:루카13,22-30 구원과 멸망 (마태 7,13-14 ; 마태 7,21-23)


2.말씀연구


나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됩니다. 그 믿음 때문에 내 행동이 변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예수님께 자랑하려 하지 않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게 만듭니다. 그런 나를 예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그 믿음 때문에 오늘도 나는 좁은 문으로 향합니다. 의로움을 간직하기 위해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베풀고, 오늘도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첫째(구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느 동네나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가르치셨습니다. 여행은 예수님의 일이었고, 그분의 일은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구원이 지금 당신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진리,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길, 구원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목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러 동네와 마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졌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그렇게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나 또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보는 사람마다, 머무는 곳마다, 함께 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고,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고,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이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율법학자들이 다룬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구원받을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웃, 형제”이라는 개념을 자기들 끼리만으로 생각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물은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 사람은 확실히 자기네 백성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 선택받은 백성에게 약속된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질문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저야 물론 구원되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 말고 구원 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말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신지를 모르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즉 이 말씀대로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들어가기 위해 애써야한 다는 것은 들어가기 위해서 나 자신과 주변의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좁은 문은 고행과 회개의 문입니다. 이 회개가 지금 필요한 것이니 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은 열려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열려져 있는 구원의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다음에는 그 문이 닫혀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못 들어간다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열심히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경기에서 우승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잔치에 비유되곤 합니다. 집주인인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잔치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문이 닫힐 것입니다. 미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바깥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겠지 떠나버린 당신이기에….. 울면서 후회하네.>




그러므로 지금 기회를 이용해야 합니다. 구원의 때가 다하고 나면 오직 심판만이 남을 것입니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문밖에 있는 사람들은 집주인에게 그들이 전에 했던 것들을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을 모독한다고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지만 예수님의 친구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떠보고 시험할까를 궁리했었습니다. 그들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그들은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전에 레지오 단장을 했고, 내가 전에 사목회장을 했고, 내가 전에 무엇을 했던 간에,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내가 비록 거룩한 제단에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셨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모른 체 하실 것입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절망스럽겠습니까? 외면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철저히 거부하였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통곡할 것입니다. 합당한 때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제공된 구원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 않았음을 통탄해 할 것입니다.




 “불의”라는 것은 의롭지 못함을 말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잘 하고,“말씀 실천”을 잘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멀어지면 불의를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왜 그 때 변하지 못했던가를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교만 때문에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동서남북에서 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은 이방인들입니다. 유다인들은 기대에 어긋났지만 하느님을 새롭게 알고, 충실히 하느님의 말씀을 지킨 이방인들이 하느님 나라에 뽑히게 될 것입니다.




“밖에 쫓겨나” 곧 찬란하게 빛나는 잔치자리로 상징되는 하느님 나라 밖에 쫓겨난 그들은 그곳에서 한없는 통곡을 할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라는 희랍어는 분개 또는 공포 때문에 이를 간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헤아리기 어려운 슬픔에 빠지게 된 이유는 지금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그와 동시에 조상들과 예언자들이 받은 행복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였고,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특권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오히려 그 나라에서 쫓겨나고, 그들 대신 일찍이 그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이정도 되면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하느님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이교인들 조차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입니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 가운데는, 성경에 대한 지식과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그 잔치에 초청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꿈을 산산조각 내 버리십니다. 꿈 깨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하시지 않고 구원의 문을 열어 두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인지.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지……,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첫째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마음이 식어서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래서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살아간다면 그들은 구원으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꼴찌는 지금은 죄인이라고 판명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난했기에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유다인들에게 율법학자들은 그들이 구원에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도 모르는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하지만 꼴찌라고 생각되던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행실을 고쳤기에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나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나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한 세리나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쁨으로 받아들고 실천했기에 첫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였기에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꼴찌가 될 것입니다.




꼴지는 멸망이고, 첫째는 구원입니다. 첫째가 되려고 노력합시다. 의로움으로 가득 찬 내가 됩시다. 그 의로움은 나를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앉게 해 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들을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내가 예수님께 의로움을 쌓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2.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 주는 느낌을 함께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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