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제정하여,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였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것은 나날이 넘치고 그것들에
적응하기에는 시간과 힘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정신으로
사는 것인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한 말씀으로 답을 주십니다.
종말의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복음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언하신다.
실제로 이 성전은 기원후 70년에 파괴된다.
이스라엘 독립군들이 성전 안에서 저항하자
로마 군인들이 불을 지르며 성전을 불태운 것이다.
사건을 목격한 백성은 ‘야훼의 날’
곧 심판의 날이 온 줄로 생각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노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9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봉헌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으니이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신처로 삼으오리다.
영성체 후 묵상
사람들은 종말을 너무 멀리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말은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에 관한 말씀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 자신의 죽음입니다.
세상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바꾸려는 세상은 우주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세상입니다.
내가 속해 있고 내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곳에 변화를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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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11/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제정하여,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였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것은 나날이 넘치고 그것들에 적응하기에는 시간과 힘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정신으로 사는 것인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한 말씀으로 답을 주십니다. 종말의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복음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언하신다. 실제로 이 성전은 기원후 70년에 파괴된다. 이스라엘 독립군들이 성전 안에서 저항하자 로마 군인들이 불을 지르며 성전을 불태운 것이다. 사건을 목격한 백성은 ‘야훼의 날’ 곧 심판의 날이 온 줄로 생각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노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9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봉헌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으니이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신처로 삼으오리다.
영성체 후 묵상
사람들은 종말을 너무 멀리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말은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에 관한 말씀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 자신의 죽음입니다. 세상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바꾸려는 세상은 우주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세상입니다. 내가 속해 있고 내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곳에 변화를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성체로 저희를 기르시니, 저희가 간절히 바치는 기도를 들으시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파스카를 기념하여 거행하도록 명하신 이 미사로, 언제나 주님의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종말이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종말까지 떠올립니다. 그러나 종말의 첫 번째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죽으면 그 자체로 우주도 끝납니다.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우주의 종말 안으로 미리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종말에 관한 말씀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죽음입니다. 자기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우주의 종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은 우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고 우리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곳에 변화를 가져오고 종말의 정신을 드러내자는 것이지요. 그래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시는 주님의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 날이 가까워지면 징조가 나타난다고들 합니다. ‘내가 너의 구세주’라며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평생 삶의 목적으로 여기며 살아온 것들이 아닐는지요. 명예와 재물과 자녀들이 아닐는지요. 평화로운 노년은 젊은 시절의 연습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연습이겠습니까? 끊임없이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입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참으로 좋으신 주님!
평신도주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말씀이 어느 때보다 저의 마음을 뭉쿨하게 합니다
맞아요 주님!
영생을 얻으려면 인내해야 하지요?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지만 주님!
참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참 어렵습니다
사실 저 자신…..
당신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떠들어대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마음 뿐일 때가 더 많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저 역시 예전보다 더 나아진 것이 있다면 “복음묵상”을 하는 것
외에 오히려 예전보다 신앙생활이나 교회에 관심이 적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제가 모르면 간첩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요즈음은 주일만 겨우 지키는 정도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복음묵상이라도 열심히 하는 이유는
교회에 무관심하다보니 어느 때는 소외당하는 것 같아
당신의 말씀만이라도 묵상하며 신앙인의 도리를 해야겠다는
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핑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복음묵상”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에는 당신을 사랑하기 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저를 나타내기 위해 당신을 이용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기적인 저 자신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죄스럽기도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복음묵상”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임을
자신만이 진정한 신앙인인 것처럼 ……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눈에서 멀어진다해도 마음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 않는 요즈음 예전보다 관심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는 아니라는 생각에
당신께 죄스럽습니다
보여지는 모습만 연연하며 자신을 나타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저 자신을 보니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보다는 저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그럴 겁니다
제가 당신께 가는 그날까지…
저의 세속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이 변화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복음묵상을”열심히 한다해도….
세속적이며 이기적인 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고 입으로만…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저의 습관과 못된 버릇을 고치기가
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흰 개꼬리 삼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듯이…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저 자신을 제어하는 힘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아니!
사실은 고칠려고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말씀을 깊이 새기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신앙가 헬레나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정한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야 한다고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겉치레만 하는 신앙가 헬레나가 아닌
내면이 꽉 찬 알차고 신심깊은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으니이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난처로 삼으오리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아멘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묵상하며
♬ Lacrimosa[연송(눈물의 날-주여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