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모세와 파라오

. 모세와 파라오

(읽어야 할 말씀: 탈출 4,18-13,16)

1. 시작기도: 탈출 12,1-14 파스카 축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모세와 파라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모세는 아론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백성의 원로들을 모아 놓고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이 전해지자 백성의 원로들은 모세의 말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를 만나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큰 고통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닥쳤습니다. 파라오는 자유를 향해서 꿈도 꾸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무거운 짐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너무 쉬웠다면 모세가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시련은 주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말고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또한 완고한 파라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파라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파라오의 완고한 모습은 나의 완고함을 변화시키는데 큰 거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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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세와 파라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1. 모세가 미디안을 떠나 이집트로 돌아가다(탈출4,18-23)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장인 이트로에게 가서 저는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친척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 보아야겠습니다.”(탈출4,18) 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음을 이트로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알 것이기 때문에 친척들 이야기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며 말을 하는 사람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안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친척들 이야기를 처음 듣는 이트로는 이제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에 관하여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트로는 모세의 삶에서 모세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차렸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이끌고 계셨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트로는 이집트로 돌아가는 모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안히 가게라고만 말하였습니다.

     

    평안히 가게”(탈출4,18)

    언젠가는 떠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준비하고 있던 시간들,

    그날이 언제인지 몰랐기에

    한편으로는 가슴조이며 살아왔던 긴 시간들.

    이제 떠나야겠습니다.”라는 말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느낀 미디안의 사제 이트로.

     

    한 번도 하지 않은 친척들 이야기를 했지만

    하느님을 섬기는 이트로가 모세의 변화를 눈치 못 채지는 않았으리.

    그도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큰 사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느꼈고,

    하느님께서도 그에게는 모세의 사명을 알려 주셨으리.

    붙잡지 말라 하셨으니 붙잡지 않은 것이고,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못 붙잡은 것이리.

    그래서 아무 말 않고 모세를 보내며

    평안히 가게라고만 말했으리.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긴 시간 묵묵히 자신과 딸과 그리고 양떼를 돌보아 준 모세에게

    조용히 감사하며 살아왔던 이트로.

    딸과 손자들과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가는 모세의 뒷모습은

    태양에 빛을 발하는 아카바의 높게 솟은 붉은 바위산들처럼 그렇게 보였으리.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떠나가는 모세의 뒷모습은 그렇게 보였으리…,

     

     

    모세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 나귀에 태워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느님께서 확신을 주시고 함께 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모세는 손에 하느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쥐어 준 그 모든 기적을 명심하여 파라오 앞에서 일으켜라.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내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하겠다. 그러면 너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말하였건만, 너는 거부하며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이겠다.’”(탈출4,20-23)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선택받은 특별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느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는 것은 야훼 하느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파라오는 끝까지 고집을 피워 재앙을 끌어당겼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태양신의 아들이요 살아있는 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뜻이 법이요 하느님도 자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은 더욱 완고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파라오가 완고함을 붙잡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완고함을 붙잡은 파라오는 자신의 맏아들이 죽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선과 악을 선택합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잘되기를 바라시지 멸망하기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파라오라 할지라도 그가 멸망하기를 바라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완고하게 만들다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를 알고 계신다는 것이고, 그를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결국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들을 잃고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며, 하느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선택은 늘 책임을 동반하고, 그 책임은 반드시 인간 편에서 짊어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니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고, 하느님 뜻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2.2.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다(탈출4,24-26)

    모세가 길을 가다 어떤 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께서 모세에게 달려들어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치포라가 날카로운 차돌을 가져다 제 아들의 포피를 자르고서는, 모세의 발에 대고 나에게 당신은 피의 신랑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모세를 놓아주셨습니다. 그때 치포라는 할례를 두고 피의 신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게 되고, 그 할례의 피로써 모세가 죽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모세가 이집트로 가고 있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가고 있는 모세를 주님께서 죽이려 하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피를 통한 구원에 있습니다. 즉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집트의 맏아들들의 죽음이 예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계약의 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창세17,10)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아기의 포피를 잘라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레위12,3)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의 표지입니다. 탈출기는 할례가 하느님 백성이 되는 자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스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하고, 돈으로 사들인 종이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는 이방인들도 누구든지 할례를 받으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는 마음의 할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을 다시 되돌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배신하고, 하느님께 맞서 죄를 짓고, 조상들의 죄악을 따라 하는 것이 할례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속죄와 겸손을 통해서 죗값을 치르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명기도 계약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무딘 마음을 버리기 위하여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과 너희 후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어,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셔서, 너희를 살게 해 주실 것이다.”(신명30,6)

     

    여호수아서는 계약의 표지와 함께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표시로 할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할례를 베풀게 하고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 버렸다.”(여호5,9)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짧게는 이집트의 맏아들의 죽음을 통한 이집트의 탈출을 미리 보여 주고, 길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어린양의 희생제사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2. guest 님의 말:

    2.3. 모세와 아론이 백성 앞에 서다(탈출4,27-31)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형 아론을 대변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게 용감한 형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세는 어릴 때 파라오의 딸의 양자가 되어 왕궁으로 들어갔고, 긴 시간 미디안 땅에서 목자로 살아갔으니 아론과 모세가 함께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를 위해 서로가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길을 가다가도 서로 모르는 체 그렇게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론에게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가거라.”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아론은 길을 떠나 하느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났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형제의 만남을 성경은 짤막하게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형제의 만남은 인간적인 친교를 위한 만남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구원을 위한 만남이었습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자기를 보내면서 하신 모든 말씀과 자기에게 일으키라고 명령하신 모든 표징을 아론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아론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아론은 모세의 입이 되어 모세와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용감한 형제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의 원로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들려주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표징들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백성은 믿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의 고난을 살펴보셨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 오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세보다도 더 큰 표징을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 안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음은 그만큼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요, 큰 것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마음이 닫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의 일을 볼 수가 없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으며, 하느님의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나타나시어 말씀하신다면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까요? 내 옆에 있는 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가 내 옆에 있는 이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예수님께서 그 어떤 모습으로 오시더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내 옆에 있는 이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눔 8: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섰을 때, 모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모세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3. guest 님의 말:

    2.4. 모세와 아론이 주님의 말씀을 파라오에게 전하다(탈출5,1-5)

    모세는 이제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아론과 함께 파라오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파라오는 세티의 아들 람세스 2세일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서, 하느님의 사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여라.”(탈출5,1)

     

    그러나 태양신인 아몬 라를 섬기고 있는 파라오는 거만하게도 그 주님이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탈출5,2)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거절하였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이라고 자처했고, 자신의 이름에도 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람세스도 태양의 아들, 또는 빛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신과 동등한 권한을 행사하고, 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거나, 신에게서 태어났다거나, 신으로부터 사랑받았다는 이름을 넣음으로서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었습니다. 신상이나 벽화 등에도 신과 연관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신적인 위치에까지 올려놓고, 자신이 살아 있는 신()임을 드러내었습니다. 파라오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히브리인들의 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신에게 자신의 노예들이 제사를 드리러 나가게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파라오가 거절하자 모세와 아론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그분께서 흑사병이나 칼로 저희를 덮치실 것입니다.”(탈출5,2-3)

     

    이집트 사회에서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소외된 떠돌이와 소란꾼으로 간주되는 집단에게 붙여진 욕이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이란 사회에서 소외된 떠돌이와 소란꾼들의 하느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양신의 아들이요 살아있는 신인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하느님이 자신을 협박한다는 것은 파라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며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않도록 부추기느냐? 너희 일터로 돌아가라.”(탈출5,4)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이 말하고 있는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파라오가 보기에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나가겠다고 말하면서 히브리인들을 빼내려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풍부한 노동력을 빼앗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이 더 이상 말을 못하도록 단호하게 잘라버렸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내치면서 백성을 부추기지 말고, 일터로 가서 일이나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이미 일터에서 자신들의 일을 성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모세와 아론의 일터는 바로 파라오 앞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단순히 며칠이 아니라 영원히 이집트에서 빼내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부려야 만이 그 많은 토목공사와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시킬 수가 있기에 절대로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파라오는 그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리는 작업 감독들과 조장들에게 명령하여 더욱 혹독한 일을 시켰습니다.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세에게 불평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실행한 것입니다.

    첫째, 벽돌을 만드는 짚을 직접 구하게 하여 벽돌을 만들게 할 것.

    둘째, 생산량은 줄이지 말 것.”

    이렇게 하면 히브리인들이 벽돌을 만들며 쉴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어지고, 더 나아가 생산량을 못 맞출 것이니 하느님께 제사를 드린다거나 자유를 청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조장들을 닦달하면 모세와 백성들을 분리시킬 수 있는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그자들의 일을 더 힘들게 하여라. 그러면 그들이 일만 하느라 허튼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탈출5,9)

     

    파라오와 지배자들이 보기에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선동하는 사람이요, 질서를 파괴하고, 이집트의 기반을 위협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유다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위협을 느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또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듯이, 이집트의 지배자들도 더욱 히브리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에게 더욱 심하게 노동을 시킴으로써 그들이 모세에게 걸었던 기대가 모두 헛된 것임을 느끼게 하여 모세와 히브리인들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였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삶은 야훼 하느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권력에 복종시키려고 하였습니다. 파라오는 가중되는 히브리인들의 모든 고통의 책임을 모세에게 돌렸습니다. 더 나아가 해방은 불가능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선동일 뿐임을 피부로 느끼게 하여 노예 생활이 그들의 운명이요 행복임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온 이집트 땅에 흩어져, 벽돌 짚으로 쓸 지푸라기를 모아 왔고, 작업 감독들은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다름없이 그날 일은 그날로 마쳐라.” 하며 다그쳤습니다. 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은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조장들을 때리면서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어째서 정해진 벽돌 양을 어제도 오늘도 예전처럼 채우지 못하느냐?”(탈출5,14)

     

    사실 이런 파라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에서 고용주는 더 많은 일을 시키려고 고용인들의 어려움을 외면합니다. 지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약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얼마나 불이익과 차별을 받아 왔습니까? 고용인들에게 고용주들이 파라오처럼 군림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언젠가 고용인들의 원성이 차고 넘칠 때, 고용주들에게 당신 정의의 칼을 휘두르실 지도 모릅니다. 또한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힘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강요하는 것도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4. guest 님의 말:

    2.5. 이스라엘인 조장들이 파라오에게 항의하다(탈출5,15-19)

    파라오의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신없이 일을 시켜서 그들이 해방은 꿈도 못 꾸게 하고, 그들이 모세와 아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파라오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먼저 움직인 이들은 이스라엘인 조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동족을 통제하면서 작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자리가 위협을 받게 되자 그들은 파라오를 찾아가서 부르짖었습니다.

     

    어찌하여 임금님의 종들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이 종들은 짚을 받지도 못하는데, 그들은 벽돌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종들이 이렇게 매를 맞았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잘못하고 계십니다.”(탈출5,15-16)

     

    이스라엘인 조장들은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전과 다른 조건으로 일을 시키니 생산성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량을 못 채운다고 매질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인 조장들은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처럼 그렇게 노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조장들의 청원을 들은 파라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조장들을 더 몰아붙였습니다.

     

    너희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가서 일이나 하여라. 너희에게 짚을 대 주지 않겠다. 그러나 벽돌은 정해 준 수 대로 만들어 내어라.” (탈출 5,17-18)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더 나아가 꿈도 꾸지 못하도록 눌러버렸습니다. 파라오의 단호한 결정을 들은 이스라엘의 조장들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뽑혀 약간의 특권을 부여받고 동족들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감시하고 감독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동족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 작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파라오에게 적극 협조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이들도 그들의 처지를 부러워하여 그 지위에 오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나 또한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 이스라엘인 조장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 모든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릴 것이고, 동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파라오가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해내실 것입니다.

     

     

  5. guest 님의 말:

    2.6. 조장들의 불평과 모세의 탄원(탈출5,20-6,1)

    모세와 아론은 조장들이 파라오를 만나고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장들에게 들어보려고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조장들의 입에서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보시고 심판해 주셨으면 좋겠소.

    당신들은 파라오와 그 신하들이 우리를 역겨워하게 만들어,

    우리를 죽이도록 그들 손에 칼을 쥐어 주었소.”(탈출5,21)

     

    동족의 해방과 자유보다는 지금 자신들의 자리를 더 걱정하는 이스라엘의 조장들은 원망과 분노를 모세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심한 고통이 주어졌기에 모세가 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보시고 심판해 주셨으면 좋겠소.”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있는 이상, 자유와 평등은 꿈속에서조차 희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이 공동체를 이끌어 가게 되면 하느님 백성에게는 은총의 물결이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벽을 헐어야만이 은총의 물결이 밀려오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조장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백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이 모든 어려움은 모세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선동할 것이며, 모세만 사라지면 다시금 전처럼 노동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노예 생활을 하자고 백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파라오가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과 모세를 떼어 놓으려 하는 파라오의 계획은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나눔 9: 모세에게 불평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있는 이스라엘 조장들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만일 내가 이스라엘 조장들 중의 하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희망에 부풀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무자비한 압력은 체념으로 이어지고, 선동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노예살이를 하며 노동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면 갈등하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려고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주어지는 어려움들만 바라보게 됩니다. 만일 옆에 힘을 북돋아 주는 이가 있다면 다시금 힘을 내어 하느님께로 나아가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접게 됩니다. 가끔은 성당 다녀서 손해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당 다니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성당 다니고 난 다음부터는 이런저런 시련들이 많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삶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각만 가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굳이 배움과 훈련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그 생각은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도 같습니다. 신앙의 훈련은 올바로 보게 하고,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2,10)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그런 수련 과정을 거쳐 왔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끈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림 속에서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선동자들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지만

    비슷한 이들과 무리를 지으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이익이 없으면 나서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며,

    비슷한 사람이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끌어 들입니다.

    뒤에서 선동하며 그들을 앞에 내세웁니다.

    선동하지만 자신은 안 그런 척하며 어울려 살고,

    혼자 옳은 척,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하며 말합니다.

     

    그렇게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아닌 척하면서…,

     

    모세는 사랑으로 감싸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의견이니 받아들여 주고, 이해해 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쳐 냈어야 했습니다.

    쳐 내지 않았기에 그들은 다시 광야에서 불평을 만들어 내고,

    백성들을 선동하였고,

    더 나아가 금송아지까지 만들게 하였습니다.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어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그렇게 사십 년을 광야에서 지내게 만들었습니다.

    모세도 결국 그렇게 느보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섬김의 리더쉽은 성공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선동하는 이들도 섬김의 대상이겠지만

    그래서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갈 길이 먼 하느님 백성에게는 고민거리요, 기도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판단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 한 분이시니,

    그 모든 것을 맡겨 드리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 나가야 했습니다.

    그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비록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이스라엘인 조장들은 이렇게 공동체를 선동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구원을 걷어차게 만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사랑하는 동족을 위하여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모세 또한 평생을 희망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던진 부주의한 말 한마디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섬기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조장들처럼 선동하는 이들의 말모세처럼 섬기는 이들의 말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어느 순간 선동하는 이들 편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모세의 탄식기도

    어찌한단 말인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불평을 나에게 쏟아붓고 있으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동족들의 해방을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옮겼지만

    오히려 동족들로부터 불평을 듣게 되고, 그 옛날처럼 배척당하게 되었으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나를 부르신 하느님 한 분 뿐.

    내가 원망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나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하느님 한 분 뿐.

    나 이렇게 주님께 원망하였다네.

    주님, 어찌하여 이 백성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습니까? 제가 파라오에게 가서 당신 이름으로 말한 뒤로, 그가 이 백성을 괴롭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당신 백성을 도무지 구해 주시지 않습니다.”(탈출5,22-23)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습니까?”하며 하느님께 탄식하고,

    어찌할 줄 모르며 하느님께 매달리니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해 주셨네.

    이제 너는 내가 파라오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정녕 그는 강한 손에 밀려 그들을 내보낼 것이다.

    강한 손에 밀려 그가 자기 땅에서 그들을 내쫓을 것이다.”(탈출6,1)

     

    그러나

    내가 모르고 있던 한 가지.

    출애굽은 파라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파라오가 거부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뿐.

    눈앞의 것만을 보고, 주어진 어려움과 모욕만을 바라보기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한 주님의 종이었다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좌절되었다 하여 탄식하고,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하고 포기하려 하였으니

    내 자존심만 세우려 했던 부족한 주님의 종이었다네.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을 괴롭히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이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니,

    나 다시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며 이 일을 해 나가리.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나 그저 주님께 내 몸과 마음을 오롯하게 내어 드리리.

    비록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난과 비방이 쏟아져 밀려온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 길,

    주님께 매달리며, 주님만 바라보며 충실히 걸어가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파라오는 관심이 없습니다. 백성들도 처음에는 환영하였지만 더욱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게 되니 모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실패한 것이 아님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획이 있으십니다. 모세는 그저 믿고 따라오면 됩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모세는 하느님께 항복하는 파라오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시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모세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6. guest 님의 말:

    2.7. 모세가 부르심을 받다(탈출6,2-13)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을 꿈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농부가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서 봄부터 그렇게 땀을 흘리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모세의 말을 따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을 굳게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파라오에게 거절당하고 백성들의 원망을 듣게 된 모세는 하느님께 탄식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며 모세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당신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백성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도구는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느님을 움직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모세가 해야 할 일을 다시 지시하십니다.

     

    너는 이집트 임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기 땅에서 내보내라고 하여라.”(탈출6,11)

     

    모세는 보십시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하겠습니다.”라고 성모님처럼 말씀드리지 못하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도 제 말을 듣지 않았는데, 어찌 파라오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 합니다.”(탈출6,12)

     

    이스라엘 자손들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파라오가 모세의 말을 듣겠느냐는 모세의 아룀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전하라 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힘든 노역 때문에 모세를 외면했고, 파라오는 모세의 말에 꿈쩍도 안했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 못하겠습니다! 저도 좀 해방시켜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 합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 주셨고, 아론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으니 모세가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다시 보내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도록 해야 하고, 이집트 임금 파라오에게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내보내도록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힘들게 자신들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모세와 같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처럼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며, 그 어려운 길에서도 하느님의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그들의 봉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게 될 것이고, 그 감사는 봉사하는 이들에게 큰 힘과 위로를 줄 것입니다.

     

     

  7. guest 님의 말:

    2.8. 모세와 아론의 족보(탈출6,14-27)

    이제 탈출기는 모세와 아론의 족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레위 가문의 족보를 보여 주는 이유는 모세가 레위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라헬에게서 난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기근에서 가족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레아의 셋째 아들 레위의 후손을 통해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가게 됩니다. 이 족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선택은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유다를 통해서 이어지고, 출애굽은 레위가문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각자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여 당신의 일을 맡기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응답하고 노력할 때, 하느님의 구원역사 안에서 한 부분을 작게나마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8. guest 님의 말:

    2.9. 모세가 소명을 받다(탈출6,28-7,7)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말씀해 주신 것을 다시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모세가 받은 사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자신의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한 번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똑같은 말씀을 다시 들음으로써 가슴에 새기고,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이다.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모두 이집트 임금 파라오에게 전하여라.”(탈출6,29)

     

    파라오에게 거절당했고, 아직까지는 파라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던 모세는 보십시오,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 합니다. 어찌 파라오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탈출6,30)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보아라, 나는 너를 파라오에게 하느님처럼 되게 하였다. 그리고 너의 형 아론은 너의 예언자가 될 것이다.(탈출7,1)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신이 살아있는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라오가 모세를 하느님처럼 느끼게 될 때는 하느님 밖에 하실 수 없는 일을 모세가 할 때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재앙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면 파라오는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깨닫게 되고, 모세를 붙들고 애원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면 아론은 모세 옆에서 파라오에게 당당하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많은 고통을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 앞에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들이 파라오에게 말할 때, 모세는 여든 살, 아론은 여든세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그때가 바로 하느님의 일을 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 말씀을 기쁘게 따를 수 있는 딱 좋은 나이인 것입니다.

     

     

  9. guest 님의 말:

    3. 표징과 재앙들

    모세는 아론과 함께 파라오에게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표징을 보여 주었지만 파라오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파라오의 완고함은 재앙을 끌어들였습니다. 첫째 재앙은 물이 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완고한 파라오가 받아들이지 않자 개구리 소동, 모기 소동, 등에 소동, 가축병, 종기, 우박, 메뚜기 소동, 어둠, 마지막으로 이집트 맏아들과 맏배의 죽음까지 이르는 재앙이 이집트에 내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재앙을 이집트 땅에 내리신 이유는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확신에 차서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파라오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세의 변화된 모습은 하느님 백성의 봉사자들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봉사자의 변화의 원천은 자신의 능력이나 역량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모세는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표징과 기적들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고 두려워하였지만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파라오가 고집을 피우게 놔두시는 이유는 파라오가 이집트 백성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해방시키셨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계속되는 재앙 속에서도 완고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파라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완고함을 버리지 못했기에 이런 재앙을 끌어들인 것처럼, 나 또한 완고함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파라오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재앙을 끌어당기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는 파라오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언제나 공동체 구성원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지도자와 함께 하는 이들은 그가 공동체를 위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공동체에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밀려올 것입니다.

     

    3.1.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다(탈출7,8-13)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파라오에게 보내시며 파라오가 기적을 일으켜 보라고 하거든 아론에게 지팡이를 집어 파라오 앞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지팡이는 큰 뱀이 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파라오에게 갔습니다. 파라오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가 하느님께서 보내서 왔다면 뭐 내가 믿을 만한 징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뭐 하나 보여 봐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기적을.” 하며 증거를 보여 달라고 모세와 아론에게 말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아론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이 자기 지팡이를 파라오 앞에 던지자 지팡이는 큰 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요술사들에게 뱀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을 하였습니다. 이집트의 요술사들은 자기네 요술로 그와 똑같이 하였습니다. 그들이 저마다 자기 지팡이를 던지자, 그것들도 큰 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것은 마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파라오는 교만하게도 하느님의 능력이 요술사들의 능력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아론의 지팡이가 삼켜 버렸지만 그 정도 능력의 하느님이라면 우리 요술사와 같은데, 내가 너의 하느님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입니까?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그 자체가 바로 완고함이요 교만함입니다. 그렇게 파라오는 마음이 완고해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10. guest 님의 말:

    4. 파스카 축제(탈출12,1-28;43-13,16)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먼저 파스카 축제를 지내도록 명령하십니다. 이 파스카는 종살이에서 자유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축제요,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건너가기 위한 표식을 남기기 위한 축제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축제입니다. 그리고 이 축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완성될 것입니다.

     

    모세는 파스카 축제에 대해서 너희는 이것을 너희와 너희 자손들을 위한 규정으로 삼아 영원히 지켜야 한다. 너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실 땅에 들어가거든, 이 예식을 지켜라.”(탈출12,24-25)라고 지시하였습니다. 400년 이상의 긴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날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 날은 하느님의 전능으로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된 날이기에 대대로 기념해야 합니다. 파스카를 축제로 지내며 기억함으로써, 파스카는 바로 지금 현재의 은총이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해 주셨던 엄청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언제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하느님께만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탈출12,11)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바로 이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대로 편성하여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4.1. 파스카 축제

    하느님의 은총으로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파스카는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참된 파스카를 미리 맛보게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파스카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고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예살이에서 자유로운 삶으로 건너간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날로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스카를 영원히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새로운 시작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탈출1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아빕 달 바로 오늘 나왔다.”(탈출13,4; 23,15;34,18)라고 말씀하셨기에 아빕 달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해를 시작하는 첫 달이 됩니다. 아빕은 “(보리) 이삭이란 뜻입니다. 첫 달은 양력 3-4월에 해당되는 니산 달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니 기뻐하며 기억하기 위한 축제를 여는 것은 당연합니다.

     

    파스카 축제를 과월절이라고도 하는데 파스카 축제는 니산 달 14일 밤부터 15일 밤까지의 축제이고, 무교절 축제는 니산 달 14일에서 21일까지의 축제입니다. 니산 달 14일은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 축제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날 무교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누룩을 치우고 거룩한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 두 가지 축일이 혼동되었기에 이 기간을 과월절 또는 무교절이라고 불렀습니다.

    파스카 어린양

    이날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해가 지면 각 가정마다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 어린양을 한 마리씩 잡았습니다. 식구가 적을 때는 몇 집이 어울려 어린양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어린양의 피는 받아서 우슬초를 이용하여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서 그 집이 이스라엘 백성의 집임을 표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파스카 축제를 지낸 이 밤에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마지막 재앙을 이집트에 내리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밤에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으로 섬김을 받았기에 그 모두가 헛된 것임을 밝혀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발린 피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표지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거르고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먹는 방법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하는데 음식을 먹는 방법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든 한 집에서 먹어야 하고. 고기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되며,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파스카양의 뼈가 부러지지 않는 것처럼, 참된 파스카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뼈도 부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 좌우에 달려있던 두 강도는 뼈가 부러졌지만 예수님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참된 파스카 어린양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날 밤에 하느님 백성은 파스카 어린양의 고기를 통째로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모두 먹어야 합니다. “쓴 나물누룩 없는 빵은 이집트 종살이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파스카 축제 때 고통을 상징하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자신들의 옛 처지를 생각하며 하느님의 구원에 감사하게 될 것이며, 하느님의 전능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돈으로 사들인 종은 누구든 할례를 받았으면 함께 먹을 수 있으나, 거류민과 머슴은 함께 먹지 못했습니다. 파스카 음식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합니다. 서둘러 먹는 이유는 이제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떠날 사람은 다른 것들에 마음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식

    하느님 백성이 함께 모여 파스카 음식을 먹으며 기억하기에, 이 축제는 하느님의 구원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기도이며,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가져오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축제를 영원토록 지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자녀들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것에 대해서 이 예식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것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이다. 그분께서는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우리 집들을 구해 주셨다.”라고 대답해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자녀들도 파스카를 알아야 하고, 그 자녀들이 어른이 되면 이 파스카를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의 파스카 예식

    각 가정도 파스카 축제를 지내며 기도하는 밤, 가족의 친교를 이루는 밤을 만들게 된다면 신앙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만들고, 이것을 자녀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가정의 전통으로 물려준다면 인성교육과 신앙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한 음식을 차려놓고, 이 음식을 마주하고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자녀들은 신앙적인 것을 부모에게 물어보고, 부모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앙생활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이야기해 준다면, 그 밤은 분명 하느님을 찬미하는 밤이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밤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에게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4.2. 무교절 축제

    하느님께서는 니산 달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을 반드시 지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해가 지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기에 14일 저녁은 15일의 시작이므로 축제기간은 7일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집에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누룩 든 빵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잘려 나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축제 기간에는 첫날과 마지막 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합니다. 거룩한 모임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모임입니다. 그 두 날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느라고 마음을 빼앗긴다면 거룩한 모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허락된 것은 그날 저마다 먹어야 할 것을 준비하는 정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무교절 축제를 지내야 합니다. 무교절 축제를 지냄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을 대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절 축제를 지냄으로써 이집트의 노예 생활과 약속의 땅에서 자유인으로서의 삶은 반드시 달라져야 하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 백성은 축제를 지내며 하느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누룩을 치우듯이 노예 생활에서 몸에 밴 모든 불필요하고, 부정적인 삶의 자세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농부들도 누룩 없는 빵의 축제를 지냈는데, 이 축제의 목적은 새 수확물을 묵은 수확물과 뒤섞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무교절에는 새 곡식물을 순수하게 하느님께 봉헌해야 했기에 옛 곡물로 만든 누룩을 넣지 않았습니다. 또한 거룩한 제사 의식에도 순수한 빵만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누룩을 통한 변질입니다. 누룩은 발효를 시켜 빵을 부풀리는데 이것을 변질로 이해하면 부패와 타락의 상징이며 죄의 원인이 됩니다. 누룩처럼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 그를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고,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내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은 누룩이 되어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마음을 변질시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 자녀들은 변질을 가져오는 누룩에서 벗어나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참된 파스카 어린양이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교절 축제를 지내면서 새롭게 태어나듯이,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무뎌지거나 변질된 삶의 형태가 아니라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4.3. 맏아들과 맏배의 봉헌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첫아들은 주님에 의해 축성되고, 속세를 떠나서 사제로서 오로지 하느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13,2)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인간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농사일을 처음 시작한 농부가 땅에서 첫 소출을 얻게 되면 그는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모릅니다. 게다가 그 땅을 아버지가 한평생 모은 돈으로 사 주셨다면 첫 소출을 들고 아버지께 달려가 감사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맏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기 위해 이집트의 맏이들을 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맏이들을 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맏아들의 봉헌을 명령하셨습니다. 맏아들을 봉헌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통해서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되고, 내 아들의 생명의 기원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며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께서는 사제직을 레위인들에게 한정시키셨고, 첫아들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권리를 기억하도록 하려고 첫아들은 성전에 봉헌하며 다섯 세켈의 돈으로 속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사제들의 몫을 정해주시며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육체를 지닌 온갖 것들 가운데에서, 모태를 처음으로 열고 나와 주님에게 바쳐지는 것도 모두 너의 것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맏아들은 대속해야 한다. 부정한 짐승의 맏배도 대속해야 한다. 한 달 된 것부터 대속하는데, 그 값은 스무 게라를 한 세켈로 하는 성소 세켈에 따라 은 다섯 세켈로 정하여라. 그러나 소의 맏배나 양의 맏배나 염소의 맏배는 대속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거룩한 것이다. 그 피는 제단에 뿌리고, 굳기름은 주님을 위한 향기로운 화제물로 불에 살라 바쳐야 한다.(민수기18,15-17)

     

    약속에 땅에 들어가면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모든 수컷은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나귀의 첫 새끼는 양으로 대속해야 하고, 대속하지 않으려면 그 목을 꺾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뒷날, “너희 아들이 왜 그렇게 하십니까?’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곧 종살이하던 집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셨다. 그때 파라오가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으므로, 주님께서 사람의 맏아들부터 짐승의 맏배까지 이집트 땅에서 처음 난 것을 모조리 죽이셨다. 그래서 나는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수컷을 모두 주님께 바친다. 그러나 아들들 가운데에서 맏아들은 모두 대속하는 것이다.”(탈출13,14-15)

     

    모세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축제의 규정들과 맏배의 봉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너희는 너희 손에 감은 표징과 너희 이마에 붙인 기념의 표지로 여겨, 주님의 가르침을 되뇔 수 있게 하여라.”(탈출13,9)

     

    손과 이마에 표시를 붙이면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되뇌게 되면 하느님께서 베푸셨던 은총을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고, 하느님의 구원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묵주 반지를 끼고 다니며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기억하도록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7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8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9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6,4-9)

     

    유대인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말씀을 써서 가죽 함에 넣고 가죽끈으로 왼팔과 이마에 매달았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작은 상자의 끝의 폭을 더욱 넓혀 신심을 과장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마태오 23,5)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지는 않고 차의 뒷좌석이나 가방에 넣고만 다닌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묵주 반지를 끼고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묵주는 결코 기도의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깨어 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11. guest 님의 말:

    5. 열째 재앙: 이집트 맏아들과 맏배의 죽음(탈출12,29-36)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냈습니다. 집집마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발랐습니다. 이들은 당장 여행을 떠날 복장을 하고서 불에 구운 어린양 고기를 온 식구가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천사들이 이집트에 내려와 대문에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그냥 지나가고, 이집트인들의 집에서는 파라오의 맏아들로부터 시작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조리 치셨습니다. 그러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이집트인들이 모두 그 밤중에 일어났습니다. 이집트인들의 모든 집에서는 곡성이 진동하였습니다. 초상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 파라오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말하였건만, 너는 거부하며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이겠다.”(탈출4,22-23)

     

    이제 협상 테이블에서 파라오가 가진 선택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맏아들까지 죽었으니 파라오는 하느님의 전능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파라오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너희도 이스라엘 자손들도 어서 일어나 내 백성에게서 떠나라. 너희가 말하던 대로,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 너희가 말하던 대로, 너희의 양과 소도 데리고 가거라.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복을 빌어 다오.”(탈출12,31-32)

     

    이집트인들은 죽은 맏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하며 우리가 모두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기네 땅에서 어서 떠나가라고 재촉하였습니다. 그들이 재촉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빵 반죽이 부풀기도 전에, 반죽 통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일러 준 대로, 이집트인들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가지를 요구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인들에게 호감을 사도록 하시어, 요구하는 대로 다 내주게 하셨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장식품들과 옷가지들을 아낌없이 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인들을 털었다고 전해주고 있지만 사실 정당한 대가를 받은 것뿐입니다. 아니 더 받아도 부족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아무것도 없이 광야로 나서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노예살이로 고생했던 보상을 하느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이집트인들에게서 받아 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파라오의 신하들과 백성의 눈에는 모세가 위대한 인물로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430년간의 이집트 생활을 뒤로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이집트를 떠나는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과 설렘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기쁨에 넘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모세는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을 향하여 출발을 선포합니다. ! 출발합시다. 약속의 땅으로…,

     

     

  12. guest 님의 말:

    6. 정리해 봅시다.

    정리해 봅시다.”는 이 과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며, 말씀의 핵심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말씀으로 묵상기도를 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탈출기 51절부터 1316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중에서 내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파라오 앞에 섰던 모세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신에 차 당당해지는 모세의 모습을 통해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맏아들이 죽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내기로 결정한 파라오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어떤 것이 참된 이익이고 어떤 것이 손해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선택에 있어서 후회가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선택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을까요?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을 함께 느껴 봅시다. 그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나는 일상 삶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7. 실천사항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깊이 있게 받아들였다면 그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되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는 열정이 생겨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무엇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열정이 솟아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실까요? 말씀을 삶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세 가지 정도를 정해 봅시다. 이것은 삶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정해보는 것이니 구체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이것을 하겠다.”고 정해 봅시다. 또한 다음번 모임 때, 이 실천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서로 이야기한다면 기쁨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8. 말씀으로 기도하기

    말씀으로 기도하기는 이 과에서 나에게 깊이 있게 와 닿은 말씀을 가지고 이 장의 전체를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비와 은총을 청하고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를 성체 앞에서 바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내가 정한 실천사항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인지를 주님과 이야기하고,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가슴에 와 닿은 말씀이 가슴에 자리 잡고, 가슴에 자리 잡은 말씀이 나를 이끌 수 있도록 자주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머리로 받아들인 것을 가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그 말씀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묵상기도 없는 성경공부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는 묵상기도로 이어지고, 묵상기도는 내 삶을 주님과 일치시키는 중요한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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