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집트로 돌아가는 모세

2.1. 모세가 미디안을 떠나 이집트로 돌아가다(탈출4,18-23)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장인 이트로에게 가서 저는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친척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 보아야겠습니다.”(탈출4,18) 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음을 이트로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알 것이기 때문에 친척들 이야기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며 말을 하는 사람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안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친척들 이야기를 처음 듣는 이트로는 이제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에 관하여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트로는 모세의 삶에서 모세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차렸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이끌고 계셨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트로는 이집트로 돌아가는 모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안히 가게라고만 말하였습니다.

 

평안히 가게”(탈출4,18)

언젠가는 떠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준비하고 있던 시간들,

그날이 언제인지 몰랐기에

한편으로는 가슴조이며 살아왔던 긴 시간들.

이제 떠나야겠습니다.”라는 말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느낀 미디안의 사제 이트로.

 

한 번도 하지 않은 친척들 이야기를 했지만

하느님을 섬기는 이트로가 모세의 변화를 눈치 못 채지는 않았으리.

그도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큰 사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느꼈고,

하느님께서도 그에게는 모세의 사명을 알려 주셨으리.

붙잡지 말라 하셨으니 붙잡지 않은 것이고,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못 붙잡은 것이리.

그래서 아무 말 않고 모세를 보내며

평안히 가게라고만 말했으리.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긴 시간 묵묵히 자신과 딸과 그리고 양떼를 돌보아 준 모세에게

조용히 감사하며 살아왔던 이트로.

딸과 손자들과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가는 모세의 뒷모습은

태양에 빛을 발하는 아카바의 높게 솟은 붉은 바위산들처럼 그렇게 보였으리.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떠나가는 모세의 뒷모습은 그렇게 보였으리…,

 

 

모세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 나귀에 태워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느님께서 확신을 주시고 함께 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모세는 손에 하느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쥐어 준 그 모든 기적을 명심하여 파라오 앞에서 일으켜라.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내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하겠다. 그러면 너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말하였건만, 너는 거부하며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이겠다.’”(탈출4,20-23)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선택받은 특별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느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는 것은 야훼 하느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파라오는 끝까지 고집을 피워 재앙을 끌어당겼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태양신의 아들이요 살아있는 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뜻이 법이요 하느님도 자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은 더욱 완고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파라오가 완고함을 붙잡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완고함을 붙잡은 파라오는 자신의 맏아들이 죽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선과 악을 선택합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잘되기를 바라시지 멸망하기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파라오라 할지라도 그가 멸망하기를 바라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완고하게 만들다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를 알고 계신다는 것이고, 그를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결국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들을 잃고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며, 하느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선택은 늘 책임을 동반하고, 그 책임은 반드시 인간 편에서 짊어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니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고, 하느님 뜻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2.2.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다(탈출4,24-26)

모세가 길을 가다 어떤 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께서 모세에게 달려들어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치포라가 날카로운 차돌을 가져다 제 아들의 포피를 자르고서는, 모세의 발에 대고 나에게 당신은 피의 신랑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모세를 놓아주셨습니다. 그때 치포라는 할례를 두고 피의 신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게 되고, 그 할례의 피로써 모세가 죽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모세가 이집트로 가고 있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가고 있는 모세를 주님께서 죽이려 하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피를 통한 구원에 있습니다. 즉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집트의 맏아들들의 죽음이 예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계약의 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창세17,10)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아기의 포피를 잘라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레위12,3)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의 표지입니다. 탈출기는 할례가 하느님 백성이 되는 자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스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하고, 돈으로 사들인 종이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는 이방인들도 누구든지 할례를 받으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는 마음의 할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을 다시 되돌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배신하고, 하느님께 맞서 죄를 짓고, 조상들의 죄악을 따라 하는 것이 할례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속죄와 겸손을 통해서 죗값을 치르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명기도 계약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무딘 마음을 버리기 위하여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과 너희 후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어,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셔서, 너희를 살게 해 주실 것이다.”(신명30,6)

 

여호수아서는 계약의 표지와 함께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표시로 할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할례를 베풀게 하고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 버렸다.”(여호5,9)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짧게는 이집트의 맏아들의 죽음을 통한 이집트의 탈출을 미리 보여 주고, 길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어린양의 희생제사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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