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첫째 재앙: 물이 피가 되다(탈출7,14-25)
파라오가 자신의 완고함을 내려놓지 않자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첫 번째 재앙으로 나일강의 물이 피가 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재앙을 일으키기 전에 파라오에게 먼저 이야기하여 미리 경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일강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나일강 상류의 에티오피아의 고원 지대에 폭우가 쏟아지면 붉은 흙이 강물에 흘러들어 나일강물은 해마다 범람하기 직전에 붉은 흙탕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붉은 나일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흙탕물과 핏물은 다릅니다. 나일강물이 핏물로 변하면 주민들의 삶이 불가능해 집니다. 먹을 물도 없고, 빨래할 물도 없고, 씻을 물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가서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를 임금님께 보내시어,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하셨는데도, 파라오께서는 여태껏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보아라, 내 손에 있는 이 지팡이로 나일강 물을 치겠다. 그러면 물이 피로 변할 것이다. 강에 있는 물고기들은 죽고 강은 악취를 풍겨, 이집트인들이 강에서 물을 퍼 마시지 못할 것이다.’”(탈출7,16-18)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일강의 재앙을 통해서 파라오의 마음을 흔들어 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파라오가 자신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그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백성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이는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나일강물이 핏물이 될 것임을 파라오에게 선포하였지만 파라오는 믿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럴 힘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아론에게 지팡이를 잡고 이집트의 모든 물위를 향하여 손을 뻗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일강물이 모두 피로 변하였습니다. 강물 뿐 아니라 운하와 늪 등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고, 물속의 고기들까지 다 죽어서 악취를 풍겨 도저히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또다시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로 자신의 요술사들을 시켜 똑같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파라오는 백성들을 담보로 하느님께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물이 피로 변하여 먹을 수가 없게 되자 이집트 백성은 우물을 새로 파는 등 물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상황이 일주일이나 계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조금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아집과 착각에 사로잡히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입니다. 지도자는 백성들의 삶을 담보로 무모한 도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권력은 백성을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백성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파라오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눔 10: 완고한 파라오의 모습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리고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국민의 생존권을 담보로 자신들의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시위하는 병원의 직원들, 시민들을 담보로 시위하는 대중교통의 봉사자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고용주는 덜 주기 위해서 권력과 밀착하고, 고용자들은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받기 위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고, 또 어떤 경우는 과격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 것이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혼자만 잘 살려 하면 안 됩니다. 서로 합의하여 결정한 것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서로의 권리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무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성당에서의 봉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자들은 내 것만 중요하고, 내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함께 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지, 혼자 그것만 하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내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결국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 중심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그건 봉사가 아니라 봉사로 포장된 나의 취미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공동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옆에서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봉사자들을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열심히 하는 봉사자들”은 외면당하고 소외당합니다. 안 그럴 것 같은데 꼭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모두 그 열심한 봉사자에게로 돌립니다. 이스라엘 조장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모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봉사직도 권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봉사를 진정한 봉사로 만들어야지 자신을 드러내는 계기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봉사(奉仕)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애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봉사하는 이는 자신의 자리를 생각하지 않고, 봉사하는 이는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