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은 자연적인 현상을 신의 섭리로 생각했고,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물들에게도 신성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에 신성을 부여하며, 그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탈출20,2-3)
우상숭배는 이집트에서 긴 시간 동안 종살이를 하던 백성들이 반드시 버려야 할 항목이었고, 가나안에 정착해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이집트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말똥구리도 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신성을 부여했고, 파라오조차 자신이 살아있는 신이라고 선포하며 백성들을 통치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로마시대로 이어져 황제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며 통치수단으로 삼았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거짓 메시아가 끊임없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다른 신이 없다는 것”는 것은 오로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흠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신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이 없기에 그것들을 형상화한 “신상”은 숭배를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고, 그 신상 자체는 신입니다. 그런 신상을 우리는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매의 머리를 한 신, 황소나 악어의 모습을 한 신, 뱀이나 하마의 모습을 한 다양한 신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우상과 허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탈출20,4-5)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후에는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성상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성상을 주님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상을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성상을 만들어 놓고 그 성상이 “하느님이시고,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신상이요 우상입니다. 그 성상이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거나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으면 그 자체가 우상이 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성상들이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화나 성상은 한 편의 잘 정리된 교리서입니다.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성화는 성경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열게 하며,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성모님의 슬픔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 슬픈 조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감사하고, 성모님의 슬픔에 동참하며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다짐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그 성상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지, 결코 성상만을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군은 수많은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는 잔인한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그 십자가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원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의 상이 달려 있어야 만이 십자가가 참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5세기부터 1계명에 탈출기 20장 2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포함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을 신으로 섬기거나 온갖 조잡한 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의 위험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우상은 재물이라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
재물은 신의 형상을 띠고 있지 않지만 그 어떤 우상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재물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고, 하느님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재물은 힘이 있어서 사람을 죽이게까지 하고, 사람을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멸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물을 섬길 때 인간은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재물을 섬길 때 인간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재화로 바라보며, 재화를 축적하기 위해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동합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재물로 보며 악마보다 더 잔인한 악당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이 먼저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될 때, 재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재물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우상숭배는 악마에게 절하는 행위입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식으로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악마는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듯 그렇게 세상을 보여 주며 예수님을 유혹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4,9)
참으로 달콤한 유혹입니다. 재물의 유혹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첫 마음을 잊게 만듭니다.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인간은 첫 마음을 잊어버리고 재물을 움켜잡으며 재물과 하나가 되려 합니다. 그 재물을 움켜잡으려 끊임없이 악마에게 절하며 양심을 팔아넘기게 됩니다. 결국 재물은 자신을 붙잡으려고 하는 인간을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를 단호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4,10)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절하여 재물을 얻을 계획이 있으셨다면 굳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오로지 하느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하느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생명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이에게 아낌없이 복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가 계명 안에서 살아가면 자녀들도 그 계명 안에서 살아가고, 그 자녀들이 계명 안에서 살아가면 그 자녀의 자녀들도 계명 안에서 살아갈 것이기에 그 복은 지속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며 계명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삶은 구원에 이르는 삶이고, 그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이는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기에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나눔 19: 한 분이신 하느님을 어떻게 흠숭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느님을 흠숭해야 합니까?
절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 앞에 나를 낮춘다는 것이고, 상대방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우상에게 절하며 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받아들여 부모에게도 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제사를 지내며 돌아가신 부모님께 절을 하는 이유는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이지 숭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부모가 신이 되었기에 경배를 드리는 예식이 아니라 조상을 기억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 예식입니다. 제사는 자녀들에게는 공경과 효도를 가르치고, 형제자매들 안에서는 일치를 가져옵니다. 이 제사를 통하여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고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더욱 화목하게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또한 한국인의 예절은 몸의 예절이고, 한국인의 기도는 몸의 기도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를 하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고, 어른 앞에 가면 손을 모으며, 인사를 할 때는 고개를 숙입니다. 또한 절을 하면서 몸으로 어른께 인사를 드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그 몸을 귀하게 여깁니다. 돌아가신 분께 절을 올리는 것은 그분께 대한 최대한의 존경과 애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부모에게 절을 하지 않는 행위는 한국문화권 안에서는 분명하게 불효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계명이 아니라 조직의 이념이나 주장이 중심이 된다면 그것 또한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온 생애를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과 구원을 기억하면서 살아갈 때, 나는 하느님만을 섬기며 재물을 섬기는 삶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