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주님의 종 모세의 죽음(신명 31,14-34,12)

2.5. 주님의 종 모세의 죽음(신명 31,14-34,12)

주님께서는 모세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자 모세와 여호수아를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세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 이제 너는 조상들과 함께 잠들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은 저 땅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낯선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저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나의 계약을 깨뜨릴 것이다.”(신명31,16)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느님을 잊고, 우상숭배에 빠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의 구원과 업적을 기억할 수 있도록 노래로 적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끝까지 이 백성의 지도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날 모세는 이 노래를 적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모세의 노래(신명32,1-43)

노래에는 부르는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잘 알고 있는 모세는 노래로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 줍니다. 모세가 알고 있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자애가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용서를 청할 때 언제나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이것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모세의 인생에는 많은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라면 모세의 노래가 가슴 깊이 와 닿을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는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이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만을 참된 하느님으로 섬기며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자비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라는 내용입니다. 모세는 그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부모는 자녀에게, 공동체는 다음 공동체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모세의 노래를 전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하느님의 구원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이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래를 만들고 있는 모세의 모습은 큰 감동을 줍니다. 약속의 땅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모세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모세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노래를 지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 노래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섬김의 리더쉽은 자기 때에 결실을 거두려고 하는 삶이 아니라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주고, 나무를 다듬어서 다음 사람이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느보산에서의 모세(신명 32,48-52)

주님께서는 모세를 느보산으로 부르시어 이 백성이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백성을 그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십 년 동안 그 힘든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보여 주기만 하시고, 모세에게는 그곳에 못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간 것처럼, 너도 네가 올라간 산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가야 한다. 그것은 너희가 친 광야에 있는 므리밧 카데스 샘에서, 이스라엘 자손들 한가운데에서 나를 배신하였고, 이스라엘 자손들 한가운데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을 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 들어가지는 못한다.”(신명 32,50-52)

 

므리바에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민수20,5) 모세와 아론은 공동체 앞을 떠나 만남의 천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너의 형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불러 모아라. 그런 다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이렇게 너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민수20,8)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님 앞에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모세는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은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민수20,10)

 

서운함이 밀려오거나 화가 났을 때는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화가 난 상태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실수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마치 자신이 바위에서 물이 쏟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모세가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 또한 모세의 실수입니다.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바위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만 하면 충분했습니다. 바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물이 터져 나오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은 모세가 바위에서 쏟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쏟아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잘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지적하시며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민수20,12)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주님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주님의 종에게는 죄가 됩니다. 그런데 민수기와 탈출기의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민수기와는 달리 탈출기에서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17,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평범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피조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신 분, 피조물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만 거룩함이 온전히 해당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은 모세가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온전한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냄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했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쏟아지게 만드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드러냈어야 했는데, 모세는 므리밧 카데스 샘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 하고 맹세한 땅이다. 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신명34,4-5)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번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종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그곳이 바로 약속의 땅이요,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세는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죽어간 동족들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이 들어가야 동족들도 광야에서 생을 마치지 않고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죽어간 이들도 하느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받고 있었던 하느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 백성에게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고, 모세로 하여금 광야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종 모세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았고, 역경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였습니다.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하느님의 종 모세의 삶은 하느님을 위한 삶이었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모세의 삶은 하느님 백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고통이 아니라 모세에게도 큰 고통이었습니다. 모세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는 부르신 분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르신 분의 뜻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제 모세는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여호수아에게 나머지 일을 맡겨야 할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여호수아를 사랑한 모세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다음 이 세 가지를 분명하게 여호수아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첫째,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하느님께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굳게 믿고 행동하라.

둘째,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공동체의 반대 속에서도 당당하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수행해야 한다.

셋째,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봉사자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기에 조직관리를 지속적으로 잘 해야 한다.

 

여호수아도 섬김의 리더쉽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섬김의 대상이기에 하느님 백성과 다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은 인도의 대상이기에 강한 훈육과 지속적인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백성이 원하는 것이 언제나 진리는 아닙니다. 백성이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허락해서는 안 되고, 절제시켜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삶의 모습을 모르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다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됩니다. 모세는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면서 섬김의 리더쉽의 한계와 자신 안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부족함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여호수아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자신의 부족함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의 세 가지를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다음 세 가지를 분명하게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하느님께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굳게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하고자 하는 것에 은총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모세가 확신을 가진 순간부터 모세는 당당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파라오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갈대 바다 앞에서 당당하게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려 마른 땅을 밟고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 바다를 건너가게 하였습니다. 확신을 가진 하느님의 종은 누군가가 어떻게 그런 것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면, 기쁨에 가득 차서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것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하느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붙잡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게 만들고, 확신의 기초를 흔들어 놓아 하느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하느님 백성을 향해서도 하느님께서 주신 지팡이를 높이 들어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도 음식이나 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찾아야 한다고 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종은 언제 어디서나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둘째,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공동체의 반대 속에서도 당당하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수행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것은 인간에게나 불가능한 것이지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온 열두 명의 사람들 중에 열 명이 불가능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불신자들의 무리로 변해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한 번 받았던 원로들은 모세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폭도들에게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칼렙과 여호수아가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모세는 그들 앞에 엎드릴 것이 아니라, 더욱 확신에 차서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며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했습니다. 폭도로 변한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 종살이 하던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꾸짖고, 하느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야 한다고 지팡이를 높이 들어 외쳐야 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는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방향을 비추는 등대처럼 그렇게 하느님을 향한 길을 비추며, 공동체가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는 홀로 공동체를 이끌 수 없으니 봉사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봉사자들이 영적으로 눈먼 봉사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며 조직관리를 해야 합니다. 봉사자들을 영적으로 성숙시켜야 하고,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함께 하던 이들이 등을 돌리게 되면 그 누구보다도 무서운 적이 됩니다. 하느님의 백성도 사람의 무리이기에 지속적인 교육과 조직관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올바른 인성 위에 신앙이 자라게 하고, 그렇게 성숙된 신앙 안에서 봉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리더는 끊임없이 배려해야 합니다.

이트로는 모세가 혼자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트로의 말대로 백성들 중에서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성경의 관심사는 아니겠지만 모세가 뽑은 이들과 백성의 원로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조직관리를 어떻게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만일 모세가 이들이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영안에서 살도록 자극하며,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해 주었다면, 백성들의 동요와 불신을 잠재우고 모세를 신뢰하며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데 큰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하느님 백성답게 살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계명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을 지켰다면 그들은 결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계명을 배우고, 배려와 존중을 배워 익혀 삶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책임을 맡은 이들과 함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불평과 불만, 판단과 심판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인내와 친절, 사랑과 용서에 익숙한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막에도 지속적으로 비가 오면 풀이 자라고 꽃이 피게 됩니다. 그러나 그 비가 그치게 되면 다시 모래로 덮이게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사막과 같습니다. 사막과 같은 하느님 백성을 끊임없이 돌보며 은총의 비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이 은총의 비로 말미암아 신앙이 깊이 뿌리 내릴 때, 어떤 시련 속에서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제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모세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이 맡았던 무거운 짐을 인계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모세가 맡은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느보산에서 모세의 마지막 기도

저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 한다하시니 여기서 내려놓겠습니다.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시니 그것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 저의 책임이니,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죽어간 동족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저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을 저곳으로 이끌지 못한 인도자였기에

저는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 약속의 땅이 보이기는 하나 눈물에 가려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느보산의 바람이 제 눈에 들어와 눈물을 나게 한 듯 합니다.

 

긴 시간을 걸어 왔습니다.

돌아보면 잘못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었습니다.

두렵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 가까이 가지 않았었더라면하고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이 백성의 불평과 불만을 보는 듯하였고,

매일매일 쏟아지는 불평과 불만은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괴로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야의 밤은 길기만 하였습니다.

제가 사랑한 제 동족은 저보다는 자신들을 더 많이 사랑했고,

제가 사랑한 당신의 백성은 주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가라 하신 이 길을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백성과 함께한 시간, 사십 년.

부족한 저를 이렇게 써 주셨으니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 동족을 약속의 땅으로, 자유의 땅으로 이끌 수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긴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파라오의 억압에서 풀려나왔을 때는 저 땅이 눈앞에 있는 듯 했습니다

갈대 바다를 가르며 마른 발로 홍해를 건널 때는

제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힘차게 저 땅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제 눈에는 오직 주님만 보였습니다.

제 동족들도 너무나 기뻐했고, 저를 존중해 주고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의 삶은 제 동족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먹어야 했고 마셔야 했기에 그 모든 것이 불편으로 다가왔고,

저를 향한 원성은 날마다 높아만 갔습니다.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 주셨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의 노예 생활은 존중을 잊게 했고, 배려를 잊게 했고,

섬김과 따름을 잊게 했습니다.

조상의 전통도 모르고, 신앙도 모르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편안해야 했고,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야 했으며, 자신들을 알아주어야 했습니다.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 그리고 반란.

그들 입에서 감사가 터져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감사하다며 저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 가져다 준 적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기에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단 말입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백성인 제 동족을 저는 사랑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그리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긴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오늘도 느보산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 바람에 잠시 몸을 맡기면 요르단강 건너 약속의 땅이련만

너는 갈 수 없다라는 말씀하시니 여기서 내려놓겠습니다.

두 손에 가득 잡은 것이라면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지만

마음이 붙잡은 것이라 내려놓겠다.” 말씀은 드리지만

한생을 붙잡아 온 것이기에 내려놓으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니,

보여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이곳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제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여기에서 눈을 감으렵니다.

영원의 시간도 주님과 함께 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평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세를 생각하며 애곡하였습니다. 주님의 종 모세가 죽은 뒤, 주님께서는 모세의 시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뒤를 이어 이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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