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엄마와 아기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들이 결합되어 있어서 흔히 하나로 나타날 수 있을 지라도 실제로는 둘입니다. 조만간 한편이 다른 한편에게 '너'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 '너'라는 명칭의 표출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탄생시키는 하느님의 위격에 대한 체험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아직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년 동안 아무런 말없이 계속해서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밤의 정적 속에서 또는 햋빛 찬란한 환한 길거리에서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웃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진실되이 사랑으로써 '아빠'라고 부르기에 이르는 것은 참된 하느님 세대의 머리가 바뀌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인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랑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요한 1,12-13) 그 날은 위대한 날입니다. 나는 그 날이 조만간 모든 사람을 위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입을 움직여 '아빠'라고 부르게 하시기 때문이며 사랑으로 가득찬 그분의 의지가 끊임없이 우리를 돌봐 주시고 강력하게 부추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 간다." (사도 17,28)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1. Allegro : Gloria in excelsis Deo - Antonio Vivaldi 


211.42.85.34 함 바실리오: 아빠~
이제 말배우기 시작하는 아가에게서 듣는 이 소리에 환희를 느끼는 아버
지를 보면서, 하느님도 그런 맘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 [07/29-09:54]

이 글은 카테고리: 사랑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