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호숫가에서
빵을 많게 한 기적을 보고
배불리 먹었지만 극소수의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었으며,
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성체성사에 관한 어려운
담화를 들은 후
그분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요한 6,66참조)
많은 사람이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았지만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그 일 때문에 정말로
그분을 죽이려고 작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적이 그들의 계획을
혼란 스럽게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12,10 참조)
결코 어떤 기적도
우리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여정을
면제해 주지 못합니다.
다만 도움을 주거나
어떤 증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공간을
메울 만큼 많지 않다구요?
도대체 하느님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는
피조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분의 사진, 그분의 상징,
그분의 부르심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는 지극히 탁월하고
무한하고 아름답고 완전하신
그분 속에, 그리고 아주 특별한
꿈 속에 잠겨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분명히
아주 강한 일치를
향해 가는 무한한 다양성의
한 부분이 아닙니까?
피조물의 모든 투명성이
그분의 투명성이 아니겠습니까?
우주의 광대함이 그분의
무한하심의 상징이 아닙니까?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요구에
대한 응답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분과의 관계, 그분과의 대화,
그분의 발견은 믿음을 통해,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