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공짜도 없는 세상이지만
오늘 복음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나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다.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와 같은 생각을 모조리 배격하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의무도, 감사를 해야 할 빚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내세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중 누가 어떤 어려운 일을 하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봉사를 했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그래 수고했어요. 당신같은 사람 때문에 저희가 살아요…”이런 칭찬을 받지 않으면 그 봉사의 끝이 기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아무 조건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기대하는 것이다.
내가 남들 보지 않는데서 착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남들은 몰라주어도 좋지만 하느님께서는 알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베드로 사도는 마태오 복음에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태19,27)라고 묻는다.
즉 보답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마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모든이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는 주인의 마음처럼…
그럼으로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9.16)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하물며 해 드린것이 별로 없는 나는 하느님께 요구할 것이 뭐가 있을까?
우리의 기도 형태도 하느님께 바라기만 하는 형태이다.
이제 하느님께 무엇을 바라지 말고 그분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분께서 그 보답으로 축복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