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들은 대부분 여기에 나오는 그 농부처럼 처신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그들에게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그 종은 그 농부가 일 년 동안 고용한 농사꾼이었다. 따라서 그 농부는 그 일꾼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그 종은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보살필 뿐 아니라 집안을 돌보아야 했다. 그는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 농부 자신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종에게 엄청난 요구를 한다. 그는 별것 아닌것처럼 시키지만 종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종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농부는 집에 있었다.
종이 지쳐서 돌아왔지만 농부는 식탁에 기대어 그에게 시중을 들라고 시킨다.
이것을 상상해 보시라. 내가 종이되어서 별것도 아닌 농부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장면을.
보잘것 없는 사람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종은 하루 일을 마친 후라서 배가 고팠겠지만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자기 종에게 한 마디 감사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권리만을 행사한다.
종은 종일 따름이며 농부가 명령한 대로 해야 한다.
…………………….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이 비유는 무자비한 농부와 불쌍한 종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비유는 단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만을 묘사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시중은 종의 시중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와 같은 생각을 모조리 배격하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의무도, 감사를 해야 할 빚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내세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
베드로 사도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태19,27)라고 묻는 것처럼 보답을 바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마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모든이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는 주인의 마음처럼…
그럼으로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9.16)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하물며 해 드린것이 별로 없는 나는 하느님께 요구할 것이 뭐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