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가 시작된지도 벌써 4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제나 오늘이나 다른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형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재를 받았는데 받았을 때나 안 받았을 때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재를 받았으면 뭐 변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생각은 있는데 마음이 따르지를 않습니다.”
사람이 한 순간에 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당신의 어린양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어제에 이어서 단식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단식을 한다는 것은 단지 식사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진정한 의미의 단식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남에게 지운 멍에나 비방등을 거두고, 내 것을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워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안식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바친 주님의 날은 기쁜날이고 귀한 날이니 이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일을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문득 그간 주일을 보낸 것을 반성해봅니다. 주일 미사 참례하고 이곳 저곳으로 놀러 다녔던 저 자신의 모습안에서 제가 주일의 의미를 손상시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니 적어도 주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습니다. 또 주일이 다가오지만 어떻게 놀까? 어디로 갈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간 내어서 기도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예수님께서는 오늘 세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런데 세리는 누구입니까? 돈을 만지는 사람. 돈을 걷어서 로마에게 바치는 사람. 횡령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결국 그는 죄인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죄인을 부르십니다.
아니 남들이 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트집을 잡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럼 우리가 이들과 안 어울려 주면 누가 이들과 어울려 주겠습니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과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좋지 못하고, 착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사람은 누구와 어울려야 합니까?
제가 존경하는 후배 신학생이 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동료와 어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후배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너는 왜 그 애랑 어울리니…”
그런데 후배의 대답은 예상외였습니다.
“제가 그 친구랑 놀아주지 않으면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어요”
“……”
참으로 훌륭한 후배였습니다.
그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학생은 결국 신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어찌보면 그와 어울려 준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예수님의 사명이 이것이었다면 나 또한 그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에게만 다가갈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다가가려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세리의 마음! 아마 기분 끝내주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다가오신 예수님 앞에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