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례 가운데 나오는 부속가인 성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송가(시온이여 찬양하라) – 감동적인 신비주의적 내용을 더 찬양해야 할지, 아니면 저자의 신학적 지식의 깊이를 더 찬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 의 제 2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 “정성 다해 찬양하라. 찬양하고 찬양해도 우리 능력 부족하다! ” 이 노래의 의미는 성체성사의 신비가 우리의 언어능력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찬미를 다 동원한다 해도 그 신비의 위대성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 전례를 해석하려는 우리도 이러한 느낌을 체험하고 있다. 오늘 전례는 자극적이면서도 깊은 생각을 요하는 많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전례의 전체적 구조에 비추어 특히 돋보이는 몇 가지만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빠스카의 ‘기념’으로서의 성체성사
첫 번째로 깊이 생각해야 할 내용은 본기도와 감사송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기념’이라는 말의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 “이 기묘한 성체성사로 당신의 빠스카 신비를 기념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항상 구원의 은혜를 느끼며 당신의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빠스카 신비를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또 압축적으로 신비스럽게 재생되는 신비로 대하게 된다.
이에 관해 지극히 아름다운 오늘의 감사송이 더욱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 “그리스도는 당신 사도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잡수시면서, 십자가의 구원을 기념제가 지니고 있는 실질적인 효과가 서술되고 있다. ”주는 이 거룩한 성사로 당신의 자녀들을 길러주시며 거룩하게 하시어, 같은 땅 위에 살고 있는 전인류를 같은 신앙으로 비추시고, 같은 사랑으로 함께 뭉쳐주시나이다. 이제 우리는 이 기묘한 성사의 제단으로 나아가, 주의 은총을 마음껏 받아누리며 천상 모습을 갖추려 하나이다.”
성체성사는 우리의 모습을 변화시켜주는 효과도 갖고 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실재성에 우리를 잠기게 함으로써 성부의 영광된 천상 모습을 닮게 된다.
성체성사의 ‘기념’은 ‘구원’을 재실현시킨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기념이라는 개념이 ‘현실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체성사에 대한 기념은 단순한 주관적 기억이 아니라 하나의 전례적 행위이다. 주님을 현존케 하는 전례행위일 뿐만 아니라 성부 앞에서 성자의 특별한 희생을 기념하는 전례행위이다. 이 전례행위를 통해 성자는 그를 성부께 바치는 희생 봉헌과 천상 대사제로서의 중재적 역할 속에 현존하시게 된다. 성체성사에 대한 기념은 성자께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 성부께 드리는 간구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교회의 은총의 행위이며 간구이고 또한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은총의 행위이며 간구이다”(M. Thurian, L`Eucaristia, Memoriale del signore, sacrificio di azione, di grazie e d`intercessione, ED. A. V. E., Roma 1967, p. 193).
성서적 전승에 따르면 ‘기념’(히브리어로는 zikkaron)이라는 말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특히 유다의 빠스카[과월절]에 적용된다. 유다의 빠스카는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최초의 해방에 대한 기념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시기 위해 이 순간에도 우리 각자가 처하게 되는 상황에서 행하시는 구원행위의 재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다의 빠스카가 하느님의 구원적 행위를 재현함으로써 기념하고자 했던 그 사건에 대해 어째서 ‘미슈나’(Mishnah : 탈무드의 가장 핵심적이고 오래된 부분)가 다음과 같이 기록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 “모든 세대에 있어서 인간 각자는 이집트로부터, 개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잇는 듯이 생각해야 한다… 그 결과 그 오래된 구원의 행위는 전례의 거행을 통해 가까이 다가오게 되고 마치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이 순간에도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해방시키신다”(S. Cipiani, L`Eucaristia, “attualizzazione” della storia della Salvezza e “sintesi” del mistero ecclesiale, in “Volto e anima della Chiesa,” Ed. Dehoniane, Napoli 1970, pp. 184-185).
이러한 차원에서 성체성사의 기념적 의미는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데 그 이유는 빠스카 신비의 주인공이 “우리를 위한 중재자의 일을 하시기 위해”(히브 7, 25) 오늘도 성부 곁에 살아 계신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구속 희생은 성부께 대해 현재적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 현재적이다. 성자는 이미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봉헌케 했던 바로 그 사랑과 희생의 의지를 항상 새롭게 하시고 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