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5 주일
제 1 독서 : 이사 55, 10-11
제 2 독서 : 로마 8, 18-23
복 음 : 마태 13, 1-23 또는 13, 1-9
제 1 독서 :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는 제2 이사야서(이사 40-55장)는 바빌론 유배 중(기원전 587-538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용기와 신뢰를 주기 위해 쓰였다. 예루살렘이 다시 재건되고 이방민족들이 주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이 예언자의 전망이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 말씀의 능력에 대한 경탄스런 고백이다. 그분의 말씀은 선포된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이런 고백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신뢰를 갖도록 인도한다.
제 2 독서 : 이 텍스트는 파스카 사건을 우주적 차원에서 잘 표현한 대목이다. 지금은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지만 하느님 자녀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주 전체가 파스카 사건을 통해 그 방향이 재정립된다. 여기서 세상의 모든 존재에 의미와 약동을 주시는 성령의 역동성이 강조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킴으로써 당신 아들의 죽음을 죄인들을 위한 죽음으로 변화시키셨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죄의 용서와 하느님의 자녀 됨은 파스카 신비의 열매이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이 파스카 신비는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피조물에게 적용된다.
복 음 :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무엇보다도 희망의 메시지이다. 하느님은 쓸데없이 당신 말씀을 낭비하고 계시며 우리는 그 말씀이 헛되이 뿌려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낭비는 사랑의 법칙이다. 아버지는 집을 떠나간 작은아들에게 쓸데없이 재산을 낭비했고, 집에 같이 있던 큰아들에게는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였다(루가15장 참조). 작은아들은 곧 재산을 탕진하였고 큰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와 같이 있었는데도(루가 15, 29)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이다.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낭비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쓸데없이 하느님이 말씀이 낭비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이 마태오 복음 13장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담겨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풍성하게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 각자는 장애되는 요소를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길바닥이나 돌밭같이 무관심한 마음, 가시덤불에 짓눌리는 마음을 갈아엎고, 말씀이 잘 뿌리내리는 비옥한 땅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복음 말씀은 하늘 나라에 관한 비유 중,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씨앗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요, 받은 곧 우리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씨앗은 새들에게 쪼아먹히고, 타버리고, 짓눌리고 혹은 풍성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혹은 좋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에 있어서도 말씀은 싹이 돋아나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으며, 성장 도중에 죽는 수도 있으며, 풍성하게 성장해서 결실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마음 준비 여하에 따른 것입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길쌈할 수 있는 베틀을 만드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에게는 과년한 딸이 셋 있었습니다. 큰딸이 시집을 가게 되자 노인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베틀을 지어 주마.” 큰딸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위가 높은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권력을 길쌈할 수 있는 베틀을 지어 주십시오.” “그래라.” 노인은 권력이 길쌈되는 베틀을 만들어서 큰딸에게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가운데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돈 많은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재력을 길쌈할 수 있는 베틀을 원합니다.” “그래라.” 노인은 돈이 길쌈되는 베틀을 만들어서 가운데 딸에게 주었습니다. 얼마 후, 막내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다른 것은 좀 부족하더라도 화목하게 살고 싶습니다. 화평을 길쌈할 수 있는 베틀을 원합니다.” “그래라.” 노인은 화평을 길쌈하는 베틀을 지어서 막내딸에게 주었습니다.
몇 해가 지났습니다. 노인은 이 세상을 하직할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딸들의 집을 순례하고자 길을 떠났습니다. 큰딸은 과연 경비도 삼엄한 고관대작의 관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만난 딸의 푸념은 길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한시도 마음놓을 날이 없습니다. 남편이 권좌에서 밀려날까 봐, 경쟁자가 나타날까봐 불안하기만 한 나날입니다. 더욱이 많고 많은 청탁이며 원망에 몸둘 곳이 여의치 못합니다.” 다음은 가운데 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가운데 딸은 역시 돈으로 도배를 한 듯한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만난 딸의 하소연은 길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돈 등창이 나서 못살겠습니다. 남편은 바람이 잘 날이 없고, 친지들은 물론 별의별 사람들까지 다 손을 버리고 돈타령을 하는 통에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지경입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막내딸은 삼간집에서 단촐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잔잔히 베어있었고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ꡒ아버지, 무엇 하나 부러울게 없는 저희 집입니다. 남편은 작은 기쁨도 크게 받아들이고 자식들은 오손도손 우애가 좋습니다. 아버지, 저희 집에서 며칠 더 묵어 가십시오.”
같은 딸자식이지만 천차만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모습, 이것은 마치 똑같은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속에 뿌려졌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에 따라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우리 자신의 마음의 밭에 뿌려진 하느님의 말씀은 다 똑같습니다. 그 말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했을 때에는 처음의 생각과 기대 이상을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되지만, 그 말씀을 소홀히 하고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않을 때에는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고 갖가지 세속의 유혹과 시련에 떨어져서 우리 스스로 그 말씀을 죽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도록 물도 주고 가꾸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데 별반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의 탓, 환경이나 재능을 탓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고 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에 따른 신뢰와 이 신뢰를 바탕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하느님의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처럼 그분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그분에게로 돌아가지 않는 생명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인간은 온갖 교묘한 술책으로 서로 속이고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불변하며 인간에게 도움을 베풀어줍니다.
어떤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는 그 끔찍했던 시절에 한 가지, 성경 말씀을 간직하고 살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사야서 43장 1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건져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이 성경 말씀을 그는 매일 반복하여 입으로 외우며 살았습니다. 다른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말할 것이 전혀 없을 때에 이 말씀만을 의지하여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를 굳세게 지탱해 주었고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말도 많고, 헛소문, 유언비어도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그대도 마지막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요, 당신 온몸으로 당신의 진실을 증명해 보인 분이십니다. 그것은 곧 그분의 말씀이 이루어져 결실을 맺는 것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즉 성실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병자에게는 치유를, 죄인에게는 용서를, 죽은 이에게는 생명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말해야 하고 이 말씀이 어둠을 가로질러 동트는 여명의 새 아침을 가져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서 많은 결실, 풍성한 수확을 맺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