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대축일 강론, 성 안드레아 김대건, 바오로 정하상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와 영성에 대해서는 형제 자매님들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요아스 왕과 유다 고관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자 사제 즈가리야가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메시지를 전하자 사람들은 즈가리야를 돌로 쳐 죽입니다. 생각해보면 즈가리야는 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혼자 올바른체 해야 따돌림밖에 더 당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2독서의 로마서 말씀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이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고 이 희망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입니다.


더나아가 복음에서는 에수님 때문에 박해를 당할 상황이 올 것이며 형제끼리도 서로 잡아 죽게 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감당할 수 없는 독서와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순교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에 있어서의 순교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순교란 것은 무엇입니까? 순교라는 것은 하느님 때문에 목숨을 내 놓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오늘 1독서에서 즈가리야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을 순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박해를 받거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배교를 강요하는 사회적인 압력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에게 배교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당면 과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상생활안에서 내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 신앙이 순교로 다가올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때가 일상생활안에서의 순교일까요?


운전하시는 분들에게는 교통질서 지키기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차 뒤에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든지 하나 되게 하소서. 라는 빨간 스티커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사거리에서 3차선을 가로막고 우회전을 못하게 하는 차량이 있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자신이 조금더 빨리 가겠다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그렇게 버티고 있다든지. 우회전 하는척 하면서 직진으로 재빠르게 끼어들기 하는 차량을 보면서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참는것도 순교가 아닐까 합니다.




자매님들에게는 어떤게 순교일까요?


성당에 오실 때 좀 긴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오는 것도 현대의 순교가 아닐까 합니다. 몇 년전에 라디오에서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요즘 여성들의 옷이 너무도 짧아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표현은 자유다. 용기있으면 너도 해봐라. 또는 옛날에는 안그랬는데 요즘애들은 좀 그렇다.” 뭐 이런 상투적인 내용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방송이어서 그런지 여과없이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였는데 “저희야 그저 고마울 뿐이죠”라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형제님의 설명에 의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멀리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좌우지간 미사시간에 좀 덥게 입고, 좀 불편하게 입는 것도 현대의 순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신앙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도 현대의 순교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바빠서 성당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자유라고 말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먹혀 들어가지가 않으니 결국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싸우다가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의 출세를 위해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아이들의 신앙교육도 현대에 있어서는 순교를 요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론


신앙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그랬던 것 처럼, 비록 돌에 맞아 죽었지만 사제 즈가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믿고 있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순교자들의 신앙이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피로써 물려받은 신앙입니다. 비록 신앙을 선택할 때 불이익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순교로 생각하면서 매 순간 배교의 길이  아니라 순교의 길을 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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