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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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사순제 5주일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사순 제 5주일입니다. 오늘 1독서의 예레미야서 말씀은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새로운 계약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깨뜨리고 신의를 저버렸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계약을 맺어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 2독서의 히브리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는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과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렇게 예수님을 섬길 때 하느님께서도 그를 높이실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섬긴다는 것은 자신의 온 마음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입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었지만 그 계약을 저버렸습니다. 즉 자신을 죽이지 않고, 하느님의 것을 찾기보다는 자기들의 것을 찾고, 하느님의 길을 찾기 보다는 자신들의 길을 찾았기에 그들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깨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보여주시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는 자세. 자신의 길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면 용서를 청하고 다시 하느님께로 향할 줄 아는 자세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이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나를 따라 오너라”






 아내와 별거중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 발각되어 아내로부터 별거선언을 통보 받았다.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내가 잘못했으니 돌아와 줘! 앞으로는 절대로 안 그럴게!”라며 눈물로 사정을 했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린 신의(信義)를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들고 반역을 하고 우상숭배를 했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빌면 용서해 주셨는데 왜 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남편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가? 나 또한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속인 남편을 쉽게 용서할 수는 없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수난과 죽음앞에서 괴로워 하시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 하고 기원할까?’라고 번민하셨지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다. 그렇다면 나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예수님 처럼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그녀는 남편을 용서하게 되었고, 남편은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두 번 다시 눈을 돌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남편에게는 그녀의 용서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는 것보다도 더 컸다. 남편에게는 그녀와의 재결합이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보다도 더 의미 있었다. 이러한 체험 앞에서 그는 아내에게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즉, 내가 그분을 따를 때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분을 따른다고 하면서 그분께 신의를 지키지 않고, 내 멋대로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면 나는 그분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그분의 발자국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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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사순제 5주일


<서론>


 오늘은 사순 제 5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과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과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본론>


첫째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자신의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과 자신의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자해하거나 학대하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죽는다는 것과 자신의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며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투신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단체에서 단체장이 구성원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자신은 결코 희생하지 않는다면 그 단체는 결국 분열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단체장이 자신이 것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투신할 때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그 단체장의 행동을 보고서 그렇게 따라서 자신들도 투신할 것입니다. 즉 자신이 그 단체안에서 개인적인 이기심과 자기것을 챙기려는 그 마음을 버릴 때, 그 단체는 엄청난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그분으로 내안을 채울 때 내 안에서 나는 죽고 내안에 하느님께서 자리하시게 되니 나는 백배 천배의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죽이고 내 안에 하느님께서 자리하게 하시어 백배 천배의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다.


그것은 확고한 신뢰와 투신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다가오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나의 본능을 따르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번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괴로워 하시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 하고 기원할까?”라고 번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는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들을 이겨낸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에 굴복하여 안주하거나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의 길을 걷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를 때 그 고통의 길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어 우리에게 백배 천배의 결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을 따른다 함은 언제나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순탄한 길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시련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백배 천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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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사순제 5주일




아들보다 종을 더 사랑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은


아들 예수님께서 밀알이 되어 썩기를 바라시는 것이었으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수난은


나에게는 축복이요 하느님 아버지께는 영광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름이 아버지께 영광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요,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내가 사랑하고,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을 통해 나는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미사에 참례하면 옆에 계신 형제 자매들에게 인사하고, 반갑게 다가가며, 안부를 묻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내가 간직한 신앙의 맛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듯이, 나도 영광스럽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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