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이클리토스는
'모든 것은 흘러간다.'고 생각했고,
역사의 표상을 강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그 물살에 이끌려 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헤엄쳐 가거나
더 나아가 배를 타고 갑니다.
강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여행 목적을 알고 이끌려
가는 것을 즐기는 것과
그렇지 아니하고 그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노를 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태어나고 살고 일하고
사랑하고 죽는 것이 의미없는
운명처럼 보일 수도 있고,
자유롭고도 기쁜 받아들임, 노래,
탈혼상태의 관상도 될 수 있습니다.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 소명이고 부르심입니다.
이런 까닭에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없이는 삶의 이유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 우리의
소명을 깨달았다면 그 소명을
실현시키기 위한 여정에
착수하는 것은 희망을 통해서입니다.
희망은 믿음을 통해 얻은
직관을 그 나름대로 적절히 유지합니다.
희망은 자신의 소명에 대한
충실성이고, 매일매일 그 소명을
생활하게 하는 힘이며,
마지막날에 이르게 되는
머나먼 목적지를 주시하는 시선입니다.
희망은 지평선을 면밀히
살피며 도착해야 할 곳의
특징들을 마음 속에 새깁니다.
희망은 믿음에 대한 기억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무지의 상태에서 하느님에 대해
무지함을 깊이 묵상하고
그 내용을 현실화하기 위한
의지를 면밀히 탐색하는 반면,
희망은 그 내용을
시간 속으로 이끌어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시선을 광야와 산을 넘어
그 아래 밑바닥까지 보내게 합니다.
그러므로 분명 믿음이 소중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라면, 희망도 그에
못지않게 값지면서도 힘겨운 것입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Dieu ne peut que donner son amour
주님은 오직 사랑만 주시니 -떼제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