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기도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말로서는 부족합니다.
어떤 성인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자신의
신비로운 공간을 가질 만큼
모든 정의를 초월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와 통교하는 것입니다.
해보십시오.
모든 능력을 동원해도
당신의 기도의 체험을 당신의 말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정의를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기도는 두 인격체간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도할 때 어떤 절대적인
상대를 대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당신의 외부에서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을 감싸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절대적 침묵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절대적 부재, 무미건조, 어둠이나 빛,
또는 절대적 기쁨이나 충만
또는 질책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에 대한
체험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분은 새로움이십니다.
나는 그 새로움이 결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내가 그분을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기다렸을 때
그분은 떡갈나무 아래로 오셨습니다.
교회에서 기다렸을 때는 마을로 오셨습니다.
내가 기쁨 중에 그분은
찾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오셨습니다.
내가 더 이상 그분을 기다리지 않았을 때는
내 앞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결코 그분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같지 않았습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Jesus, remember me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