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념은 죽음과 그 결과를
죽음이 이르기 전에
받아들이는 지적활동일 뿐입니다.
나는 내 집, 내 재산, 내 유산,
그것들을 마지막 순간에 가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대신에 지금 포기합니다.
그 결과 나는 이미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모든 행복을
자발적으로 봉헌함으로써
내 믿음이 다른 생명에,
다른 행복에 있음을 입증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상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은총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 길로 간다면 십자가의
여정에 이르게 되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게 됩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게 될 것이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하는
부활의 서막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생활은
하나의 여정입니다.
따라서 영성생활에는
인생의 중요한 두 순간에
우리에게 아버지를
계시해 줄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세례 때와 타볼 산에서; 마르 9,7 참조)
그런데 이 안내자는
베드로의 경우처럼 믿음을 통해
발견하고 사랑을 통해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첫째 계명입니다.
인간의 목적지는 더 이상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인간이 초자연적
상태로 들어올려지면
포도나무, 밭, 집 등에
점점 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천상재화에 대한 시각이
점점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의지적으로 단념을 하는
이러한 점진적 성숙에서
모든 인간적인 것은 신적 광채가
증대됨에 따라 퇴색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아버지의
유산에 시선을 집중합니다.
없어져 버릴 재화가
무슨 관심을 끌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