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의 유년기에 관한
루가 복음을 읽으면서,
어떻게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 순례 여행 때
예수님을 잃어버릴 정도로
방심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나 같으면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광야에서 어린 양들에게 하듯이
짧은 줄로 그분을 내 발에다
묶어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요셉과 마리아가 그분을
잃어버린 사실 자체가
그들이 예수님의 일에 관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일에 관해서
아주 자유롭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표징이
되고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모친 숭배자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내버려 둘 만큼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신비로운 탁월성으로 그를
능가했던 한 인간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감시에서
멀리 벗어나시는 행위는
이들 두 사람의 신앙의
품위를 밝게 조명해 주는
아주 드높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요셉과 마리아,
그들 역시 진정코 아브라함의
희생 ('네 아들을 바쳐라')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사흘 동안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실 만큼
자유로우셨습니다.
또 나중에 땅 속에 사흘 간을
머무르실 만큼 자유로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부르실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분이 침묵하실 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어떤 일을 성취시킬 것을
요구하실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 일을 당신에게 재차
요구하실 때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신랑을 당신에게 주실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주지 않으실 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 부르심보다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선보다 더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현존을 따라
걷는 것이고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