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메세지의
전달자셨으며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시키고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
'최고의 지혜'(神)였습니다.
그분은 병원을 여시지도,
고아원을 세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한 민족의 백성으로 강생하셨으며,
맨 먼저 그 메시지를 온몸으로 사셨습니다.
즉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말보다
모범을 앞세우고 설명하기에
앞서 본보기를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방법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교리교육은 대부분 '행동'으로
보다는 '말'에 그치고,
개인의 성덕에 관한
관심보다는 강의에 그치고 맙니다.
아마도 여기에 빈약한
결과의 이유가 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의
슬픔과 고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효력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모범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범이 없는 것은 알맹이 없는 말이
믿음과 사랑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명이 있는 복음을 외치고 싶다."고
샤를 드 푸코는 자주 되뇌었습니다.
그는 가장 효과적인 사도직 수행의 방법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교활해져서
설교를 깨달으려 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기를 원하는
오늘날에는 더 그렇습니다.
'나자렛'의 시간은 행동에 앞서
기도와 희생을 통한
오랜 준비 기간이고,
하느님과 더불어 친밀한
삶을 사는 침묵의 시간이며,
오랜 고독과 정화의 시기요
자신을 감추기를 훈련하는 시기입니다.
요컨대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기에 중요한 것들입니다.
나자렛에서 사도가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