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 표징들에 관한 이야기


    상징적 표징들에 관한 이야기
    나는 내 앞에 있는 가시적인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삼라만상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 꽃들의 경이로움, 바다의 힘, 전자두뇌의 논리, 우주의 무한한 깊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다 우연이란 말을 쓸 수는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도처에서 아름답고 조화있게 또 강하고도 아주 분명하게 내게 다가드는 상징적 표징들에 대한 신학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나는 바다가 있기에 바다를 보고, 하늘이 있기에 하늘을 보고 감탄하며, 더위가 있기에 더위를 느끼며 음식이 있기에 맛을 느낍니다. 나는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즉 상징적 표징들, 자연, 우주, 이런 것들은 싫든 좋든 내가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어떤 책의 공개된 내용들입니다. 나는 그것들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내 생각은 알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어디에나 현존하며 특별히 관심을 끄는 한 중심인물을 향해 갑니다. 그는 나와는 '다른 존재'로 내 물음에 침묵으로 답하시는 절대자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사물들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상징적 표징들을 따르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도 여정 중에 있는 우리 자신을 적절히 다스리고나약한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도 같고 우리가 바란 내용에 대한 증언과도 같은 그 상징적 표징들을 따르는 것이 생활한 복음의 교리교육입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주님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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