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됩니다


    얼마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을 신뢰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신뢰의 행위는 창조주께 대한 인간의 참되고 진실된 순종이며 겸손과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믿는것', '전능하신 그분을 신뢰하는 것', 그분의 무한한 부성(父性)의 바다를 통해 앎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채우는 것,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 그분의 말씀을 알아 듣기 위해 공부하는 것, '기다릴 줄 아는 것',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이 지상에서 해야하는 합당한 예배행위입니다. 그러나 교만 때문에 믿음의 길에 들어서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존재에 등을 돌려 대고 별들의 증언을 모른 체 한다면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신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증가하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말씀이 강생과 성체성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세계 자체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우리가 죽은 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동물성의 고통과 사물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 안드로메다 성운에 일어나는 일과 죽어가는 가젤영양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얼마 안 됩니다.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실망감에 사로잡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늘에야 겨우?"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Exaudi nos -떼제의 노래




이 글은 카테고리: 영혼의 양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