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리아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당신은 이상한 작은
그림 하나를 보게 됩니다.
그 그림에는 본래 4세기의
한 익명의 작가가 그린 작은 새 대신에,
마리아님의 팔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가 그려져 있는데,
그 어린아이는 요셉이 그를 위해
나무에 조각해 만들어 준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은 손수레를 꼭 쥐고 있습니다.
그 작은 새를 어린아이로
대치시켜 놓은 사람은 난데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나를 로마로 불러
청년 가톨릭 액션(Azione Cattolica)을
지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그 일은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자주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리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고뇌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특히 로마 외곽지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마다 그런 느낌을 더 받았습니다.
나는 집에 상당히 유명한 그 그림의
복제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들었고 내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랬는지 잘 모르지만,
그 작은 새를 우리 가문의 이름을
상징하는 작은 손수레로 대치하기 위해
화필을 잡을 충동을 느꼈던 것은 압니다.
나는 그 어린아이의 그림을 그리면서
마리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마리아님, 보살펴 주십시오.
나는 당신 아드님의 손에 들려 있는
장난감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지금은 더 그렇습니다.
그러니 보살펴 주십시오."
나는 로마에서 고뇌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 평온한 그림을 떠올림으로써
평정을 되찾았고, 그 날을
평화로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어려운 순간을 닥쳤을 때,
내 생각은 늘 예수님께서 나무로 된
당신의 작은 손수레를 꼭 쥐고
계신 그 그림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 수레는 험난한 세상 길을 삐거덕거리며
지나가는 또 다른 수레의 상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