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들처럼


    어린아이들처럼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복음에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아기의 특징적인 요소를 알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아버지를 믿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조건 신뢰합니다. 또 내일 먹을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에 대해 어린아이가 지니고 있는 무한하고도 철저한 신뢰, 완전한 의탁, 단순한 시선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의 확실한 길은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온전히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안흥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실, 마리아님이 믿음으로 자신 안에 마련된 이같은 영적 유아기에 인도되지 않으셨다면 과연 무엇을 생각하시고 어떤 행동을 하셨을까요? 실로, 예수님의 탄생의 신비를 이해하셨을까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대량학살을 받아들일 수도 있으셨을까요? 오히려 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개입하지 않느냐고 하셨을 것입니다. 기적을 이루실 수 있는 그분이 고작 요셉에게 도망라라고 알려 주신단 말입니까? 다 쓸데없는 주장입니다.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의 생명의 신비는 어린아이의 단순한 수용적 믿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바로 여기에 내가 갈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작은 형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적합한 명칭이고 예수님과의 가장 정확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또 다른 관계, 즉 성부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나는 맏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로 성부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분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오늘 함께하는 노래는 개신교 성가 412번^-^*~


이 글은 카테고리: 영혼의 양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