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지속적으로
가난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가난하기 위해 서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율법의 완성이 사랑에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 완성을 위해
나의 재산, 나의 부를
전부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행복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다면,
진실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내가 나 자신의
안녕과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는 동안 인류의 삼분의 일이
아사(餓死)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모른 체 하더라도 유능한
그리스도인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성인(聖人)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능한
그리스도인들은 급증하는데 반해
세상은 성인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중대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난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자기 집의 오래된 식탁을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것으로
바꾼 사람이 나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
위선의 가면을 쓰고 수년간을
살아 온 사람도 나며,
그릇된 일에 돈을
-자기만의 것이 아닌-
써 버린 사람도 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의 유혹을 경계하십시오."
양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늘날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지금 나는 고독과 기도의
도움으로 상황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관상과 가난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엄숙하게 선포하시고
생활하신 사물들로부터의 초연함이
우리의 내면에 일지 않고서는
결코 나자렛의 노동자이신 예수님,
머리 둘 곳 조차 없었던 사도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에 이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