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내게 주신
빛에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곧 나 자신의 행동을 접어 두고
관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즉 마리아님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예수님의 말씀에 겸손되이
귀기울이고, 행동가,
사도, 구원자가 되신 사랑의
예수님을 무조건 사랑하는 것 외에
어떤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형제 자매여,
당신이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섬기는
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은 요란스레 움직이며
활동하고 계획을 세우고
조금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당신에게 달려와 자기가
많은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며 자기의
계획대로 자기를 도와 달라고 청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오로지 당신만을
응시하며 형제들의 구원에 대한
갈망으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당신 사랑에 달려듭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진실됩니까?
평가는 아주 간단합니다.
언행의 일치만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언행을
일치시킬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연기, 그것도
악취가 나는 매연에 불과합니다.
잊혀진 존재, 곧 감추어져 있는
가난하고 겸손한 삶이 그리스도교
수덕 신학 전체의 이상이 아닙니까?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니냐 빠스또리’가 부른 아베 마리아 -스페인의 짚시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