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란? 은전(恩典),indulgentia

 

대사란? 

먼저 대사(代赦)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죄수들을 석방하거나 감형하는 은전(恩典)을 베푸는 일이다. 교회에서의 대사의 의미도 사전적 의미와 대동소이하게 좋은 것임을 밝혀두면서 시작하기로 하겠다.

대사(代赦)라는 말은 라틴어 indulgentia을 번역한 것이다. 바로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면죄부로 잘못 번역이 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있다가 알아보기로 하고 대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자.

죄를 지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 죄를 사면해 준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면되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따른 벌, 즉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잠벌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보속(補贖)을 통하여 사면될 수 있는데,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한 경우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고해성사, 연옥에 대한 내용은 아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바로 대사(代赦)라고 한다. 비유적으로 말해 어떤 사람이 팔에 상처가 생겼다고 하자. 이때 상처를 치료하게 되는데 상처를 치료하더라도 상처자국은 남게 된다. 바로 이 상처 자국을 없애주는 것이 대사라고 일단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상처자국 있으면 어떠냐!사는데 지장없는데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사실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면 인간적으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온전한 상태을 생각할 때 조금이라고 온전한 상태에서 벗어났을때, 원상회복이 가능한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바로 영적인 면에서 남아있는 상처자국를 죄에 따른 잠벌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꼭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들어본 것이다.–

대사는 교황이나 주교들이 줄 수 있는데, 대사의 근거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공로의 보고(寶庫)에 있는 공로를 교회의 권리로 각 영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교황이 교회의 으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전인류를 위해서 쌓아 놓은 보속과 성모님과 기타 성인, 성녀들의 보속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대사는 보통 전대사(全代赦)와 한대사(限代赦)로 나누어 진다. 전대사란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 주는 것이고, 한대사란 그 벌의 일부분을 없애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대사제도는 초대교회 박해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의 보속규정에 의하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일정기간, 예컨대 40일 혹은 80일, 300일 혹은 몇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속죄기간을 거쳐야 그에 해당하는 벌을 사면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평생토록 보속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박해기간 동안에는 이러한 규정들을 지키기 힘들었고, 후에 신자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오는 데 일종의 장애 요소로도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특별한 경우 주교들은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하였다. 이 속죄기간의 단축이 바로 대사의 기원을 이룬다고 보겠다. 그 후 중세기 초가 되면 속죄기간의 단축 대신 속죄를 사면하는 관습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속죄 규정서가 나왔다. 이것이 이른바 대사의 원형인 것이다. 즉 처음에는 사목적 배려의 측면에서 대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남용되는 면이 있었고, 그래서 급기야는 면죄부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종교개혁의 주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1545 – 1563)는 규정을 만들어 대사의 남용을 규제하였다. 그리고 잇달아 교회법에 규정되었던 엄한 보속은 폐지되었고 교황 바오로6세(1963 – 1978까지 재위) 는 대사에 대한 법을 제정하며 대사의 의미와 규정을 명확히 하였다. 이에 따라 대사를 받기 위해 신자들이 해야 할 의무들도 대폭 완화가 되는 것이다. 즉 대사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자로서(영세를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고, 성당참배를 하고 , 교황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앞의 세 조건은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후반부의 조건은 간단히 말하면, 성당참배는 하느님 공경을 목적으로 일반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고, 교황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보통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한 번씩하면 된다.–물론 최소한의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본다. 이외에도 많은 기도를 하는 것을 권장한다.–



보통 대사는 성년(聖年)–교회의 대축제라고도 불려진다. 십자군시대부터 시작되긴 하였지만, 간접적 기원은 구약시대의 희년(禧年)에서 찾을 수 있다. 최초의 성년 대사는 1300년에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제정되었다. 이 교황의 처음 뜻은 100년마다 한 번씩 이 제도가 지켜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후 성년의 주기는 3번이나 바뀌게 된다. 즉 1343년에 글레멘스 6세는 50년으로 성년의 주기를 줄여야 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1389년 우르바노 6세는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생애기간을 축하하여 33년으로 주기를 줄였다. 그런데 1470년엔 또 바오로 2세가 주기를 25년으로 정한 후에 오늘날까지 그것이 지켜져 내려 오고 있다.– 에 베풀어지지만 성년이 아닌 경우에라도 교황이 정하는 바에 따라 대사는 이루어질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대사가 벌의 사면에는 효과를 갖지만 죄 자체를 사면하는 효력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오해해서 면죄부라는 말이 나온다고 보겠다.





대사논쟁 



면죄부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대사가 옳은 말이다.



오늘날 신학연구에서 교회와 관련하여 내놓고 있는 결론 중의 하나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神人兩性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오류가 있을 수 없으며 신성하다. 그러나 인간적인 실재라는 점에서는 교회 안에 과실과 죄악이 현존하여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구성원, 특히 지도자들의 행동이 인간적 동기 또는 인간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과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한계에서 오는 과오로 인해서 대사라는 교회의 선물이 그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16세기 독일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 당시의 역사를 솔직히 함께 나누면서 어떤 인간적인 잘못을 하였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대사논쟁을 말할 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르틴 루터를 언급 안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교회사 시간이 아니기에,–사실 대사논쟁으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연출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언급을 미루기로 하겠다. 하지만 거의 필연적으로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리라 생각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직접적 동기는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 건축을 위한 대사설교에 있었다. 이 설교는 특히 독일에서 교회가 금전축적에 광분한 나머지 많은 악표양을 주었다.

1513년 제후 요아킴 1세의 동생 알브레히트는 나이 겨우 23세에 마그데부르그의 대주교가 되었고 할베르슈타트의 관리권도 얻게 되었다.그는 그 외에도 마인쯔교구까지도 소유하려 하였다.—당시 추기경, 대주교,주교 등의 이른바 고위성직자들은 중세 말기에 세 가지 입장으로 처신하게 된다. 즉 봉건영주(특히 독일과 이태리 지역의 경우), 文人들과 학자들의 후원자, 그리고 자신들의 교구를 보살피는 영신 지도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교직이란 하나의 세속적 직업과 같은 평범한 인상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신적 사명을 망각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주교들은 신학이나 사제양성 및 교육에 관심이 없었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이런 생활을 하던 주교들은 한 교구의 정상적 수입으로는 부족하여 여러 성직록을 취득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任地住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 이런 惡幣들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주교직이란 거의 귀족의 독점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고위성직자들의 부조리한 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위에서 언급된 알브레히트대주교의 모습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결국 교황청에 금화 2만 4천두카텐을 10년이내에 그 조건으로 지불하기로 계약이 되었다. 이것은 대사가 상업의 매개물로 되어버린 것을 말해준다고 보겠다.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전통에 따라 자기 밑에 대사설교가들과 고해신부들을 임명하고 자신이 이들에게 설교내용에 대한 전체적지침서(Instructio Summaria)를 주었다.–당시에 대사에 대한 제반문제에 대해 전해주는 설교가들이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교회적으로 로마 대성전 건축이라는 문제 당면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대사를 받기위한 여러조건(고해성사를 받아야 하고, 성당참배 등)에서 애긍시사의 차원에서 건축기금에 대한 권고도 있었던 것인데, 바로 이점에서 남용이 야기된 것이다.– 이 지침서는 물론 될 수록 돈을 많이 걷는데 그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아주 웅변적 과장이 많았다고 한다. 대사에 대한 교권의 가르침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없었지만 대사신학으로 봐서는 교리상의 잘못은 없었다.–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그 남용이 문제였던 것이다.– 즉, 루터가 나중에(1541년) 주장한대로 이 대사를 받음으로써 신자들의 미래의 죄까지 사(赦)해진다고 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백표를 판매하였고, 이 표를 가지면 일생 중 언제나 원하는 때에 어떤 신부에게나 고해성사를 보면 교황이 보류한 죄까지 사해진다고 한 일은 있다.—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고해성사를 아무곳에서나 볼 수가 없었다. 즉 자기가 거주하는 일정지역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허락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고백표는 바로 이러한 허락의 표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외에 언급된 내용은 금전적인 것과 연관된 남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설교가들은 이 고해성사표를 사는 순간 그만한 교회의 영적은혜를 얻기 때문에 자기 죄를 통회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설교를 했고,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서라고 대사를 얻을 수 있는데 이때도 고해성사를 보거나 통회할 필요없이 오직 돈만 주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여하튼, 설교가들은 이미 1482년 불란서 소르본느에서 광고로 붙여진 일이 있는 표어: ‘동전이 통으로 떨어지는 순간 연옥 영혼이 구원 된다’는 말까지도 인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장된 설교는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가 영혼 구원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간주하는 듯한 인상을 주게 하였다. 물론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1517년 1월 마그데부르그 교구에서는 라이프찌히에 있던 도미니꼬회 수사 텟첼을 대사설교가로 임명하였다. 당시 비텐베르그의 제후는 자기 영토 내에서 대사설교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부근의 지방으로 가서 고백표를 사게 되었었다. 루터는 그때 비텐베르그에서 고해신부로서 신자들의 고백을 듣게 되었는데, 이 대사설교가 신자들의 머리에 아주 위험한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신자들은 참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돈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려고 고심하고, 순례와 같은 외적 행사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설교가들의 장사아치 같은 설교를 비판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이 설교의 원래의 초안이 대주교의 지도아래 나온것임을 알게 되자 루터는 자기 교구 브라우덴부르그의 주교 슐쯔와 당시 교황청 대사위원 알브레히트 대주교에게 편지를 내게 되었다.

루터는 여기서 대주교에게 속히 설교가들에게 새 훈령을 내어 과장된 폐단을 없앨 것과 신학자들은 이 대사교리를 명확히 밝힐 것을 촉구하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하도록 요청하였다.–주제와는 약간거리가 있긴하지만, 위와같은 사실을 볼 때, 처음에는 루터가 교회안에서 가톨릭적 교회쇄신을 시작하였다고 보겠다. 물론 나중에 여러 주변의 상황과 맞물려 교회 밖에서의 개혁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루터는 나중에 자기가 95개조문을 발표하게된 동기가 바로 이 주교들이 자기 편지에 아무런 회답을 주지 않은 데 있었다고 말했다. 루터는 또 1518년 5월 교 황 레오10세에게와 11월 21일 자기 군주 프리이드리히에게 서신을 냈는데 후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처음 이 대사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려고 한 사실은 어느 친한 친구에게라도 알린 일이 없고, 오직 존경하올 우리 대주교님과 주교님만이 이를 알고 있었다. 이 두분만이 이런 불합리한 대사설교를 중지시킬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개조문을 발표하기 전에 먼저 이 두분에게 사적으로 서신을 내어 그리스도의 양떼들을 늑대로부터 보호해주도록 존경을 다하여 겸손되이 간청했었다. 내 편지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었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들을 증명해 줄 것이다.’고 했다. 그는 주교님들이 자기에게 아무 회신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그외 다른 학자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할 수 없이 95개조문을 발표했다고 주장한 것이다.—그러나 실제 루터가 95개조문을 1517년 10월31일에 비텐베르그의 본당 정문에 공포한 사실의 진위여부는 아직 사가들도 확실한 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알브레히트 대주교에게 보낸 서신도 역시 같은 날인 10월 31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이야 어떠하든지간에 루터가 95개조문을 낸 것은 당시 해당 주교들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주교들은 루터에게 답변해 줄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이를 묵살해버렸는데 만일 이것이 성공했더라면 루터와 교회사이에 창피스런(?) 균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95개조문의 내용을 보면 실상 당시교회의 교리로 보아서는 아무 잘못이 없다. 오직 그 말투가 너무 지나치고 논쟁적인 표현들이었을 뿐이다. 첫째 루터는 대사를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았다.‘누가 이 사도적 대사를 배척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71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신자들이 오로지 이 대사에만 의존함으로서 그보다 더 높은 사랑과 기도를 잊어서는 안된다.(41 – 47;49;52;32)고 루터는 명백히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볼 때 95개조의 내용 자체는 별로 탓할 것이 없다. 오히려 그 내용보다는 그의 논쟁적이고 자극적인 대중언어 때문에 이 95개조문은 아주 신속히 전파되었다. 이로써 루터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오래 묵은 불평들과 증오심을 건드려 자극하였고 지금까지의 기만된 희망과 불만의 대변인이 되었다.

여하튼, 95개조문은 루터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1518년 초에 라이프찌히, 뉘른베르그,바젤에서 인쇄되었고 전 구라파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교회내에서의 소용돌이가 본격화된다고 보겠다.



대사논쟁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장황하게 접근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를 접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무익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또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신자,비신자포함해서–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길게 설명을 한 것이다.



여하튼,결과적으로 대사라는 즉 Indulgentia라는 것은 결코 죄를 사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면죄부라는 말은 잘못된 번역이며 오해에서 온 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오해를 야기시켰던 부분에 대해서 인정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대사논쟁을 받아들이는 신앙인의 자세



대사논쟁을 접하면서 이런 아쉬움이 생겼다.즉 신앙인답게 혹은 지성인답게 조금만 더 기도하고, 조그만 더 숙고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었다. 이 부분은 비단 대사논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속시원하게는 아닐지는 모르지만 함께 하고자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대사문제에 있어서도 신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즉 대사논쟁이라는 사건안에서 우리는 교회의 구성원 특히 지도자들의 잘못을 접하였다. 물론 이러한 잘못을 미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대화시켜서 교회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성적으로 대사에 관한 역사적 사건을 판단하고 신앙적으로도 성숙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부분을 마련한 것이다.



20세기의 인간생존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표상들과 가치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개념, 특히 종교(신앙)적 개념으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이 양자간의 재결합은 결정적으로 불가능해진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려받은 전통의 정체성(停滯性)과 몇몇 편견에 부딪쳐 현대세계와 종교간의 이러한 격차에 대한 의식이 지연될 수는 있겠으나 현재에의 소속은 이미 마감된 과거를 서슴치 않고 폐기할 날이 조만간에 밀어닥칠 것이다. 동일한 인간정신 안에 두 개의 서로 이질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방식이 겨루고 있어 양자가 공존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자연과학의 이론, 기술과학의 장족의 발전, 경제와 사회화가 노리는 고도의 발전수준, 정치를 막론하고 어느 곳이나 거기에는 인간의 자율과 충족이 지배하고 있기에 여기에 비하면 신앙이란 전혀 근거도 없고 현실적 의미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믿는다는 것(신앙)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으며 자유롭고도 이유있는 인간의 결단이지만 이외에도 외부로부터 과(顆)해지는 ‘가르침’의해서 즉 교회의 교도권이라는 수로(水路)를 통해서 전달된다.– 교회의 말을 듣는 것이요, 그 교도권이 결정하고 정의한대로 순응한다는 것이라고 볼 때, 교회의 교육을 제대로 받은 신앙인치고 자기가 신앙을 바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상 교회는 하느님의 대변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교회의 교도권에 대한 무조건적 순명이야말로, 신앙이란 은총에 달려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면적이요 외래적이요 수동적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또하나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순명과 순종(복종)의 차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이러한 신앙의 외면성과 수동성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에 신앙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된다고 보겠다.

이렇게 신앙과 이성사이의 관계는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보겠다. 즉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결국 신앙은 이성을 부인하거나 불신하는 요소를 지니기 마련인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빠스칼 같은 사람조차도 이 이성의 부인자체를 지극히 합리적인 것으로 여겼을 정도이다. 그러나 빠스칼 역시 신앙인이었고 신앙인으로 살다가 신앙인으로 죽었다. 그러기에 그도 그리스도교를 밖으로부터 보는 사람과 같이 이성을 신앙에서 갈라놓는 저 심연의 깊이를 제대로 측량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날 합리성과 신앙의 격차를 극복하고 마침내 의식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개종자만이 이 두 질서를 갈라놓는 이 무한한 질적 차이를 신자가정에 태어난 신앙인보다 더 잘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믿는다는 것,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에게 익숙해 있는 명증(明證)이라는 든든한 지반을 버린다는 것, 우리에게 안도감을 안겨주는 합리적인 확실성을 떠나 생각만 해도 혼미와 불안을 안겨다 주는 허공으로의 비상(飛翔)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로는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외교인들에게는 어리석음’(1고린 1,23)이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바울로는 (신앙에 입각한) 통용(通用)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덧없는 꿈을 완전히 무산(霧散)시켜 버린다. 그는 인간의 가장 높은 지혜를 완전히 부인한다. 세속의 지혜와 복음사이의 반립(反立)이 바울로에게는 절대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서로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사이가 곧 세속의 지혜와 복음의 사이이다. 실상 하느님은 현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유식한 자들의 지능과 박식을 진멸하고 세속의 지혜가 어리석음을 성서를 통해서 말씀하셨다.‘너희의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다.’(이사 55.8) 그리고 이번에는 정반대로 세속의 기준을 따라서 볼 때 복음은 일종의 무능과 어리석음(1고린 1.23)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사도 바울로는 말한다.

이러한 충돌과 갈등을 현대철학과 과학의 유리주의(唯理主義)에만 국한시켜서 알아들으려 한다면, 그것은 이 충돌과 갈등의 의의 및 성격을 완전히 오해한 소치라고 보겠다. 이러한 이의신청이 비록 19세기와 20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결코 무마될 수 없을 것이며 그러기에 그것은 이 지상에서는 극복될 수 없는 양자간의 완강한 대립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이라는 말 한 마디로 신앙과 이성간의 관계를 매듭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양자간의 어떤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전무(全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은 자기가 믿는 것을 이해하고 변화하기 위하여 이성을 동반자로 삼는다. 이것이 곧 신학이다.–물론 신학에 있어서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한편 가장 자율적임을 자랑하는 서구의 철학사가 웅변으로 증언하고 있듯이 이성도 그리스도교적 계시와의 접촉을 통해 스스로를 위한 풍부한 수확을 거두어들였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계시란 인간의 오성이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조금 딱딱한 어투로 신앙과 이성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여러분에게 전달을 하였다. 상당히 이성적으로 이해하는데 난해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쭉 살펴보았듯이 결코 양자가 조화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신앙적으로 이성의 세계를 감싸주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란다.

11세기에 활동하셨던 안셀모 성인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마치기로 하겠다. 안셀모의 철학상의 입장은 아우구스티노의 ‘ 믿기위해서 알고자 함이 아니고 알기 위해서 믿는다.’는 매우 주의주의적(主意主義的)인 명제로써 신앙이 앎의 전제라 하여 신앙의 우위를 주장하면서도 신앙인이 이성에 의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즉 ‘마음 속에서 터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바로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 동시에 지성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인 오해를 소개하면서 대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해야 함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다. 그리고 좀 비약하기는 하였지만 신앙과 이성에 대한 문제도 다루었다. 신앙생활에 입문하고자 준비하는 여러분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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