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중의 성체성사

 

미사 중의 성체성사



1) 미사의 의미



먼저 미사에 관하여 알아 봅시다.

여러분이 구할 수 있는 사전을 통하여 보면 미사는 ‘천주교에서 행하는 최대의 예배 형식’이고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준하여 행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참조하십시오. 또 여러분의 주위에 천주교에 관하여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면 ‘한국 가톨릭 대사전’을 빌려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나 지금 간략히 알아 봅시다.



미사는 라틴어의 Missa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어나 한국어로 그 발음을 딴 것입니다. 이는 5세기부터 서방 라틴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의 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 안에 물려 준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만찬제사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성당에 나와서 무엇을 하는지 알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미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Missa라는 말의 의미는 ‘보내다’, ‘떠나 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뜻을 가진 ‘Mittere’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로마시대에 ‘Ite, Missa est’라는 관용어가 있었는데 이는 법정에서 ‘제판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하든지 혹은 황제나 제후, 고관대작들을 알현한 후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것을 교회가 수용하여 거룩한 만찬제사가 끝났음을 선포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미사 끝에 신부님께서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고 인사하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라틴어 미사로 하면 ‘Ite, Missa est’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앞의 ‘Ite’와 뒤의 ‘est’를 생략하고 중요한 용어인 Missa만을 사용하여 우리가 미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미사의 순서



미사에 관한 의미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이제는 미사의 순서를 봅니다. 미사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거행됩니다. 먼저 개회식을 하고, 핵심 부분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그리고 마지막으로 폐회식을 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살펴볼 성체성사는 성찬의 전례 중 거행됩니다. 그 순서를 알아 봅시다. 예식서에서 볼 수 있듯이 성찬기도문은 네 가지가 있어서 시기에 따라 사용합니다. 우리는 그 중 제 2 양식을 중심으로 살펴 봅시다.

먼저 예물을 준비합니다. 즉 빵과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빵을 들어 봉헌한 후 포도주에 물을 섞습니다. 그 의미는 뒤에 설명하도록 합시다. 봉헌기도를 한 후 시기에 알맞는 감사송을 합니다. 감사송 뒤에는 신자들의 ‘거룩하시다’ 하는 환호가 있습니다. 다음에 가장 중요한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거양성체를 합니다. 거양성체란 이미 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어 보이는 것입니다. 뒤이어 신앙의 신비여, 그리스도의 구원성업을 기념하는 기도, 산 이와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기도, 영광송, 아멘, 주의 기도, 평화의 인사, 빵을 나눔, 천주의 어린 양, 영성체, ··· 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중요한 것이나 설명을 할 수 없으니 오늘은 성체성사와 성체 변화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봅니다. 그 외의 것들은 다음에 더 자세히 알아보고 또한 미사중에 직접 묵상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살필 것들은 예물 준비와 봉헌 그리고 거룩한 변화입니다. 덧붙여 영성체를 시간이 허락하면 살펴봅니다.



3) 성체성사



우리가 성체성사라고 하는 것은 미사성제 중의 거룩한 변화와 영성체를 지칭합니다. 그 예식을 살펴봅시다.

‘거룩하시다’의 환호가 끝난 후 사제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온갖 거룩함의 샘이시여, 주는 참으로 거룩하시니, 성신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가 받자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 피가 되게 하소서.

스스로 원하신 수난의 때가 다가오자,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드시고, 사례하신 후 당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저녁을 잡수신 후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드시고, 다시 사례하신 후 당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니라.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



이러한 기도문을 사제가 드릴 때 예수께서는 신비로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로 계십니다. 즉 우리가 보는 빵과 포도주의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그것은 이제 보통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바로 이 예식이 성체성사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현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명하셨기에 세상 끝날까지 교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해 봅시다. 여기에 관련된 성서구절은 여럿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26장 26절부터 29절까지, 마르꼬 복음에서는 14장 22절부터 25절까지, 루까복음에서는 22장 14절부터 20절까지 그리고 사도 바울로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는 11장 23절부터 26절까지의 내용이 최후만찬을 이야기해 줍니다.







성체와 성체성사



1) 성체



그럼 성체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알아봅시다.

성체란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속에 실제로,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말합니다. 이는 희랍어의 ευχαριστια (에위카리스티아)에서 유래되는 용어로 흔히 라틴어 발음을 따라 Eucharistia(유카리스티아)라고 합니다. 이 말의 원 의미는 ‘감사하다’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에 감사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체에 대한 확신은 예수의 강력한 말씀에 근거하므로 성체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이 됩니다. 즉 성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천주교 신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성체는 미사 중에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해져 한 가지 신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줍니다.

우선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실재적’이고 ‘신체적’인 현존입니다. 예수께서는 사제가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니라’ 하고 말할 때 실제로 그 형상으로 변화하시어 계심으로서 항상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또한 성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즉, 미사성제를 통해 이 희생이 계속됨으로써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는 사랑의 일치를 보여줍니다. 즉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제사



좀 더 신학적으로 성서적으로 성체에 관하여 성체성사에 관하여 알아 봅시다. 그러함으로써 우리는 설명하고자 하는 성체변화를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시고 그리스도교 역시 유대교에서 기인하므로 유대교의 제사와 연결해서 생각해 봅니다.

출애급기 24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에서 우리는 계약과 희생제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인 모세는 시나이산 기슭에서 소를 잡아 그 피의 절반은 하느님을 상징하는 제단에 붓고 나머지 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리며 “보라, 이는 야훼께서 이 모든 말씀을 두고 너희와 맺는 계약의 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이 말을 듣고 제단에 둘어 앉아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친교를 맺는다고 믿었으며, 하느님은 이스아엘 백성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희생제를 지내며 야훼와의 계약을 상기 시켰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이스라엘의 제사인 파스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특히 우리가 알고자 하는 성체성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출애급의 가장 장엄한 징벌이며 동시에 장엄한 예식이 바로 이 파스카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파라오 왕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출하시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즉 어린 양을 잡아 피는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누룩 없는 빵과 곁들여 먹도록 하였습니다. 야훼는 피 묻은 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표로 아시고 그냥 지나치시고, 그렇지 않은 집의 장자는 모조리 죽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신은 두려운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파라오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켰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이 파스카입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이 날을 기념하여 기념제를 지내기를 예수시대까지 계속하였습니다. 이 기념제는 다만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제,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기념제입니다.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리라는 확신으로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정으로 기념제를 지냈던 것입니다.



3) 최후만찬



시작하면서 언급했듯이 성체성사는 최후만찬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을 다시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살펴봅시다. 예수께서는 공생활 3년을 마칠 무렵 그 당시의 관습대로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같이 하기로 하셨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예수께서 가지고 계셨던 생각이었습니다. 루까 복음 22장 15절을 참조하십시오. 그런데 예수께서는 만찬 도중에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예식을 하시다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치시고 포도주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내 피를 흘리는 것이다.”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하시며 마시도록 권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새로운 파스카 계약을 맺으십니다. 그 차이를 살펴봅시다.



구약의 파스카

신약의 파스카

어린 양의 희생

양고기(음식)

양의 피(해방의 표시)

노예생활에서 해방(육체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스도의 몸(빵,음식)

그리스도의 피(포도주,새로운계약)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영생)



이렇게 비교해 볼 때,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최후만찬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성체와 성체 변화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를 말할 때 신약의 성사로서 살아계신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참으로 실재로, 실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빵과 포도주는 형태에 불과하고 실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의 영혼과 모든 속성, 즉 인성과 천주성까지도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체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현실로는 빵과 포도주이면서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체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힘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실체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알고자 하는 성체 변화, 즉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입니다.



5) 성체변화 증명



이러한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형태가 변하지 않으면서 실체가 변화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으며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까? 이런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성체성사는 영원히 신비라는 미명하에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런데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들이 시도되고 전파되었습니다. 그 중 성서를 중심으로 한 설명 하나와 철학적 설명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성서를 중심으로 한 신학적 설명은 예수의 신성과 관계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부활하심으로 신성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생전에 당신이 하신 말씀이 사실이었음을 이로써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6장 1절부터 5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는 빵의 기적이고 다른 하나는 물 위를 걸으신 기적입니다. 이것 또한 예수님의 신성을,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예수의 말씀이 진실되다는 것을 믿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를 찾아왔을 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실 빵으로서 당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로 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이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생명의 빵입니다. ··· 진실히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여러분 안에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 사실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파견하셨고 또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이도 또한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 조상들이 먹고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예수께서 실제로 당신의 살과 피를 찢어서 주시겠다는 말도 아니요, 또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식인종이 아니고 예수께서도 우리를 식인종이 되라고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바로 최후만찬의 선언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을 다시 상기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신실하시기에 당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해 빵과 포도주의 형태를 빌어 변화시키십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는 거짓말장이시고 우리 또한 거짓말장이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거짓말장이가 아니심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즉 최후만찬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화 안에 실제로 당신이 계시어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즉 성체변화의 문제는 철학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形而上學의 實體와 偶有의 관계에서 설명됩니다. 偶有는 그 본질에 있어 다른 것 안에 그 존재의 적합성을 가집니다. 또 偶有는 실재와 실재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나 자연계에서 고찰할 때 항상 어떤 실체에 결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성체변화의 문제는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즉, 일상적으로 실체는 불변적이고 偶有는 가변적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偶有인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 남아있고 실체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은 偶有가 그 본래의 실체에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체와 偶有에 관하여 선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실체란 생멸변화하는 현상에 대하여 상주적, 불변적, 자기동일적, 실질적인 본체를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偶有는 다른 것 안에 존재가 적합한 것이지 다른 것 안에 현실적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偶有의 본질은 현실적 내속이 아니고 내속적합성입니다. 그러므로 偶有가 자연계에서는 실체와 실재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가능성에 근거하여 자연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도 더 고차적 능력 즉 제 1 원인이신 하느님의 능력이 개입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전의 기적과 말씀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활로써 증명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서적, 신학적으로 보나 철학적으로 보나 성체변화는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뢰와 그에 맞갖는 공경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체공경의 자세



우리는 앞에서 미사와 그 가운데 거행되는 성체성사를, 성체와 관련된 이스라엘의 제사와 최후만찬을 그리고 성체성사의 실체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이러한 성체성사에 맞갖게 참여하는 자세를 알아봅시다.

먼저 빵과 포도주의 준비입니다. 준비하는 빵을 우리는 제병이라고 합니다. 제병의 원료는 밀가루인데 이 제료를 직접 선택하신 예수께서는 요한 복음 12장 24장에서 스스로를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법에서도 제병으로 사용하는 “빵은 순수한 밀을 재료로 하여 부패의 위험이 없도록 최근에 제조된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빵은 초기에는 신자들이 가정에서 음식으로 먹는 빵의 일부를 가져와 미사 때 제물로 바쳤으므로 성체 축성용 빵이 특별히 없었으나 미사의 예물이 빵 이외의 것으로 바뀌자 지금과 같은 적당한 두께의 원형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포도주의 경우에는 포도 열매로 생산된 순 자연술로 어떠한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포도로 빚어 발효, 산화시킨 것이어야 합니다. 이 포도주를 미사 때에 소량의 물과 섞는데 이는 인류와 하느님의 일치를 내포하고 동시에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제병과 포도주는 성반과 성작 그리고 그 밖의 전례 도구들로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취급합니다.

다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성체는 비록 눈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빵과 같이 보일지라도 미사 중 성체성사를 통하여 변화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 형상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영성체를 할 때에나 성체를 모셔둔 감실을 지나갈 때 그리고 성당에 들어올 때에는 흠숭의 정을 표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익힌 성체성사의 신비를 우리의 삶 속에 미사 때에나 성체조배시에 깊이 묵상하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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