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담다가 이사야 예언자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와

승리의 찬가를 다시한번 보았습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몇 번을 눈과 가슴에 담으면서 그냥 기뻤습니다.

늘어져있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듯한 그런 기운을 느꼈습니다.

넘치는 기쁨의 힘으로 희망을 안고 나아가며

아버지께 찬미노래 드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였는지 새삼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자 바리사이들이 꼬투리를 잡습니다.

사랑이 우선인 아버지!

안식일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틈만나면 옭아미를 쒸우려 합니다.

결국은 없애려 모의를 하는 것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저 같으면 된통 무섭게 혼내주었을텐데요.

허긴 아버지께서는 그들역시 아버지의 사랑으로 안으시겠지요.

하루하루 신앙을 고백하면서

전 얼만큼 기쁨이 함께 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기쁨이 넘치는 삶!

바로 이것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임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기쁨이 있음에 삶에 대한 열정이 있고 나아가서는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기에

희망이 있음이지요.

모든 민족들이 희망을 거는데 전 어떤 모습으로 고백하며 살아왔는지 돌이켜 봅니다.

희망을 걸고 삶의 중심에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그 삶이야 말로

진정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이겠지요.

기쁨과 희망이 없는 삶이라면 제 작은 가슴에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지 않음을 압니다.

상황에 따라 새겼다 지웠다 하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기쁨이 기쁨이 아니고

희망이 희망이 아닌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현실과 타협하며 관계속에서 이익을 따지며 대접받기를 바라며

누군가 인정받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라사이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무뎌진 저의 신앙생활이 아니었는지 다시금 돌이켜 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작은 가슴에서 기쁨이 넘쳐

밖으로 드러나는 행복의 미소를 지니고

좌절하지 않는 희망으로 나아가는 저가 되어

아버지께 찬미노래 불러드리는 수다쟁이가 되리라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에 저를 묻어봅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자 바리사이들이 꼬투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없애려 모의하는 것을 아시고 그곳을 떠나가십니다.

제가 그 바리사이들처럼 아버지의 등을 향해 돌을 던지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진 않은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한손엔 돌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사랑함에 믿음이 자라가고

그러함에 기쁨이 넘치는 삶의 고백을 했어야 하는데 그리 하였는지요.

입으로만 사랑한다 하면서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저는 아니었는지요.

그러기에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기 보단

주어진 여건에 따라 흔들리는 갈바람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가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진실한 사랑의 색으로 삶을 칠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사랑을 키우게 하소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살아가듯 저 또한 저의 삶으로 찬미드리며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저가 되게 하소서.

사랑의 호수에 넘실거리는 기쁨의 고기되어

희망의 주머니에 들어가 찬미노래 부르는

아버지의 작은 고기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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