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다니엘(Daniel)


 

성인명 – 다니엘(Daniel)

축일 – 7월 21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같은이름 – 대니얼

 다니엘서는 구약성서에 속한 예언서이다. 히브리어 경전은 다니엘서를 성문서(聖文書)에 포함시켜 에스델서와 에즈라서 사이에 배치시키고 있으나, 70인역(Septuaginta)이나 그 밖의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를 예언서로 취급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열하고 있다.


 

 다니엘은 \’감사\’를 나타내는 뜻으로 아이들이 출생할 때 많이 붙여진 이름이다. 다니엘서의 기록에 의하면, 다니엘은 유대 왕 여호야킴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 함께 갔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우스 왕과 고레스 왕의 치하에서 궁중의 조언자로, 포로로 끌려 온 자기 민족을 위한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구약성서에 담고 있는 다니엘에 관한 보도들은 일관되지 못하며, 역사성도 결여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니엘은 결코 포로 시대의 역사적 인물로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서 비로소 형성된 상징적 인물이다. 이 상징적 인물의 기원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렇듯 다니엘서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하시딤(Hasidim, \’경건한 자들\’이란 뜻)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본다. 하시딤 사람들로 구성된 유태교 일파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대략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 이전이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으며, 이방민족들의 영향력을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당초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을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반란이 종교성을 상실한 순수 정치적 실력행사로 판단되는 순간 이들은 거기에서 이탈하여 그들 고유의 행동노선을 밟아 간다. 이들의 직접적인 후예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다니엘서 저자는 그리스화 움직임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율법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 셀류쿠스 왕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동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박해에 직면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고취시키고 있다. 다니엘서 9,4-19절과 3,26-45절이 하시딤 사람들의 정신을 잘 반영해 주는 기도문들이며, 본 기도문들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선성만을 호소하고 있다. 사후(死後)의 상선벌악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교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명해 내고 있는 것 역시 저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성 다니엘(Daniel)

 

다니엘은 유배지에서의 이민족들과의 생활과 잡다한 우상숭배가 만연한 사회에서 신앙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며,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을 당당히 선포하며, 하느님 백성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하느님의 법을 지키며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선포한 예언자입니다.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성전의 기물을 약탈해갔고,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붙잡아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불려온 사람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 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다니엘1,4)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왕궁에서 시종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방식 이름을 가져야 했는데,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빌론식 이름은 받아들였지만 음식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유배 생활 속에서도 율법의 규정을 충실히 지키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이 네 젊은이에게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야기 해주지 않은 꿈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그 뜻을 풀이해 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또한 벨사차르 임금 하느님의 집에서 약탈해 온 기물로 술을 마실 때,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 임금인 다리우스가 다니엘을 신뢰하자 다른 재상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함정에 빠트렸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다니엘은 하느님을 신뢰하였고, 그 사자 굴에서 살아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본 다리우스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다니엘을 모함했던 이들이 다니엘에게 했던 그대로 갚아 주었습니다.

또한 악으로 가득 찬 두 원로의 음모에 빠진 정절의 여인 수산나가 목숨을 잃는다 할지라도 불의와 타협하고 하느님 만을 바라보며 죽음을 향해 나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서 올바른 판결을 해 주셨고, 다니엘을 통해서 수산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키루스 임금 때, 키루스 임금은 벨 신상을 숭배하였지만 다니엘은 오로지 하느님만을 경배하며, 키루스 임금이 섬기는 벨이 아무것도 아님이 밝혀냈습니다.

저는 손으로 만든 우상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을 지배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숭배합니다.”(다니엘14,5)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신앙인들은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은 그런 곳이 어느 곳에도 없기에 신앙인들은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 19로 인하여 신앙생활이 소홀해진 이런 시대에는 다니엘을 통하여 내 신앙을 돌아보고, 당당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굳은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유배라는 큰 시련과 고통속에서도 당신 백성들을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다니엘은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희망은 유배에서의 자유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을 기대하게 해 줍니다. 이제 죽음 너머의 부활을 희망하는 하느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다니엘 예언자와 함께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내야 합니다.

 

다니엘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 체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렇게 했습니다.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유혹은 늘 나에게 다가와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길로 빠져 드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는 못하는 것, 그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행동하지는 못하는 것, 그것은 사실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니엘 예언자는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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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인명 – 다니엘(Daniel)

    축일 – 7월 21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같은이름 – 대니얼

     다니엘서는 구약성서에 속한 예언서이다. 히브리어 경전은 다니엘서를 성문서(聖文書)에 포함시켜 에스델서와 에즈라서 사이에 배치시키고 있으나, 70인역(Septuaginta)이나 그 밖의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를 예언서로 취급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열하고 있다.


     

     다니엘은 ‘감사’를 나타내는 뜻으로 아이들이 출생할 때 많이 붙여진 이름이다. 다니엘서의 기록에 의하면, 다니엘은 유대 왕 여호야킴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 함께 갔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우스 왕과 고레스 왕의 치하에서 궁중의 조언자로, 포로로 끌려 온 자기 민족을 위한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구약성서에 담고 있는 다니엘에 관한 보도들은 일관되지 못하며, 역사성도 결여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니엘은 결코 포로 시대의 역사적 인물로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서 비로소 형성된 상징적 인물이다. 이 상징적 인물의 기원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렇듯 다니엘서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하시딤(Hasidim, ‘경건한 자들’이란 뜻)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본다. 하시딤 사람들로 구성된 유태교 일파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대략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 이전이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으며, 이방민족들의 영향력을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당초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을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반란이 종교성을 상실한 순수 정치적 실력행사로 판단되는 순간 이들은 거기에서 이탈하여 그들 고유의 행동노선을 밟아 간다. 이들의 직접적인 후예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다니엘서 저자는 그리스화 움직임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율법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 셀류쿠스 왕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동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박해에 직면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고취시키고 있다. 다니엘서 9,4-19절과 3,26-45절이 하시딤 사람들의 정신을 잘 반영해 주는 기도문들이며, 본 기도문들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선성만을 호소하고 있다. 사후(死後)의 상선벌악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교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명해 내고 있는 것 역시 저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성 다니엘(Daniel)

     

    다니엘은 유배지에서의 이민족들과의 생활과 잡다한 우상숭배가 만연한 사회에서 신앙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며,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을 당당히 선포하며, 하느님 백성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하느님의 법을 지키며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선포한 예언자입니다.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성전의 기물을 약탈해갔고,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붙잡아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불려온 사람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 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다니엘1,4)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왕궁에서 시종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방식 이름을 가져야 했는데,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빌론식 이름은 받아들였지만 음식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유배 생활 속에서도 율법의 규정을 충실히 지키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이 네 젊은이에게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야기 해주지 않은 꿈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그 뜻을 풀이해 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또한 벨사차르 임금 하느님의 집에서 약탈해 온 기물로 술을 마실 때,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 임금인 다리우스가 다니엘을 신뢰하자 다른 재상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함정에 빠트렸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다니엘은 하느님을 신뢰하였고, 그 사자 굴에서 살아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본 다리우스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다니엘을 모함했던 이들이 다니엘에게 했던 그대로 갚아 주었습니다.

    또한 악으로 가득 찬 두 원로의 음모에 빠진 정절의 여인 수산나가 목숨을 잃는다 할지라도 불의와 타협하고 하느님 만을 바라보며 죽음을 향해 나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서 올바른 판결을 해 주셨고, 다니엘을 통해서 수산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키루스 임금 때, 키루스 임금은 벨 신상을 숭배하였지만 다니엘은 오로지 하느님만을 경배하며, 키루스 임금이 섬기는 벨이 아무것도 아님이 밝혀냈습니다.

    저는 손으로 만든 우상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을 지배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숭배합니다.”(다니엘14,5)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신앙인들은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은 그런 곳이 어느 곳에도 없기에 신앙인들은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 19로 인하여 신앙생활이 소홀해진 이런 시대에는 다니엘을 통하여 내 신앙을 돌아보고, 당당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굳은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유배라는 큰 시련과 고통속에서도 당신 백성들을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다니엘은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희망은 유배에서의 자유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을 기대하게 해 줍니다. 이제 죽음 너머의 부활을 희망하는 하느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다니엘 예언자와 함께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내야 합니다.

     

    다니엘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 체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렇게 했습니다.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유혹은 늘 나에게 다가와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길로 빠져 드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는 못하는 것, 그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행동하지는 못하는 것, 그것은 사실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니엘 예언자는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2. 7월20일 님의 말:

    위 그림은 베르니니의 다니엘과 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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