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과: 스테파노의 순교

 

제3과: 사도들의 삶

(읽어야 할 말씀: 사도5,12 – 6,7)

1. 말씀읽기: 사도5,12-16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다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13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 가운데에 끼어들지 못하였다.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14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 15 그리하여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16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는데, 그들도 모두 병이 나았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달라져야 합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행동이 별로 차이가 없다면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이들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제자들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보는 듯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늘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말씀을 지키고 계심을 봅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신앙 안에서 당당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는 안 됩니다.

2.1.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16,17-1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된 것입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표징과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사도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온 이들의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에페소1,19)



믿음에는 힘이 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들고, 망설이던 것들을 당당히 하게 만들어 줍니다. 한 자매가 봉사를 갔습니다. 어느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음식은 상해서 역겨운 냄새가 났고, 이불은 때와 냄새로 찌들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매는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이분께 당신의 사랑을 보여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자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아니 냄새가 사라졌다기 보다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 자매를 이불 위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불위에 앉아서 할머니와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마워요. 아무도 이 이불에 앉으려고 하지 않아. 이런 저런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가져다 놓고 가지만 방에는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요.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마주 앉아서 얘기하는 것인데…,”



믿음은 변화된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변화된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변화시켜 줍니다. 이제는 사도들을 본받아 내가 기적을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2.2. 사도들이 박해를 받다.

잘 하는 사람들은 잘 하는 것을 인정해 주고,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 보다는 그 사람들의 행동을 막아 버리고, 덮어 버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나라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두더지 게임”에 비유합니다. 두더지가 올라오면 사정없이 망치로 내리치는 것이 올바른 사람들, 보기 좋은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여 모함하는 우리 사회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내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결코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결국 하느님을 박해하게 됩니다. 대사제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2.1. 사도들의 체포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자 대사제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함께 사도들을 박해합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박해하는 이유는 시기심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시던 기적들을 사도들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자신들로부터 멀어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사도5,20)

사도들은 이제 두려움이 없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움츠러드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해도 되나? 내가 이것을 하면 저 사람들이 싫어할 텐데…, 그래! 그만두자.” 이렇게 조용히 물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열정을 나를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두려움과 갈등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의 일을 멈추지 맙시다.



2.2.2. 사도들의 증언

 대사제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최고 의회를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으러 보니 사도들이 없었습니다.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지만 사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고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사도5,25)하고 알렸습니다.



 백성의 원로들은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사도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사도들은 열정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사도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비대장과 경비병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사도들을 원로단 앞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사도들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백성들이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경비대장과 경비병들은 사도들이 옳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도들을 원로단 앞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심문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사도5,28) 그런데 이들은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그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27,25)라고 다짐하였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① 누구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베드로와 사도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5,29)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해야지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하느님보다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느님께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에게 더욱 순명하고 있는 모습을 내 자신의 모습 안에서 발견합니다. 사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본다면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여인들(산파들)

 탈출기 1장에 하느님께 순종하는 여인 두 명이 나오는데 그 이름은 시프라와 푸아였습니다. 이 의로운 여인들은 산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인이었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 여인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이집트 임금이 그들에게 분부한 대로 하지 않고 사내아이들을 살려 주었다“(탈출기1,17).

 산파들은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이 여인들을 불러 왜 사내아이들을 살려 주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이 왕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두려움과 죄의식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 여인들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그른 일인지를 알고 있고,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알 고 있었습니다. 산파의 역할은 갓 난 아이의 성별을 구별하여 살리고 죽이는 역할이 아니라 산모가 아이를 잘 낳도록 도와주고, 아이가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자신의 욕심으로 산파들에게 다른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시면서 유다인들의 무딘 마음을 질책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절대권력을 가진 파라오를 질책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이렇게 핑계를 댔습니다.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탈출기1,19)

이 이집트 산파들은 히브리 백성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어 주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았고, 그 하느님을 파라오보다 더 경외하고 두려워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산파들의 모습 안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결국 유혹이라는 것,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산파들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파라오의 명령이니 죽일 수밖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위험이 닥쳐 올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매님! 성당에서 일 좀 하시죠.”이런 말에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거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싫습니다. 제가 신부님계실 때 이 봉사를 하면 지금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를 두고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부님께서 천년만년 여기 계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신부님은 떠나실 분이시고, 저는 여기 남아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못합니다.”



 누가 옳을까요? 당연히 “예”하는 사람이 옳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다보니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산을 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을 위해서 봉사(?)하게 될 것이고, 그런 활동을 통해 결국 “성당 사람들도 별로 다른 것이 없나봐……,”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달랐습니다. 믿는 이들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이 믿음을 통해서 공동체는 성장해 갑니다.


② 가말리엘의 중재

사도들은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30-32)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의 일임을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원로단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인 가말리엘이 사도들과 원로단을 중재합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다음 원도들에게 테우다스와 갈릴래아 사람 유다의 예를 인용하면 말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은 테우다스와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백성을 선동하였지만 둘 다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버렸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사도5,36-37) 그리고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사도5,38-39ㄱ) 그리고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5,39ㄴ)



③ 사도들의 기쁨

 원로단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을 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받고 박해를 받으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1)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5,11-12)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뻐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들이 악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기에 오는 것들입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갖는 비난을 다 받게 된다는 것” 그것은 중상 모략입니다.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중상 모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며 그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을 참아 받으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러 모욕, 이런 고통도 참아야 합니다.2)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확실히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2.3. 일곱 봉사자를 뽑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3)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두 사도들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6,2-3)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고,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니콜라오스4)를 뽑아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이제 식탁의 봉사자들(부제들)은 하느님 백성을 돌보며 주님의 식탁(제단)앞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① 직무를 맡은 사람들의 역할

 자신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충실히 행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구역장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원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목위원들이 열심히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목위원들과 형제자매들이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신의 분과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봉사자는 다른 분과의 일에 신경 쓰게 되고, “신부님은 저 사람의 말만 들어!”하고 말을 만들어 버립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봉사자들을 보면 그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려고 하지도 않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댑니다.



②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는 사도들

 새로 부임한 성당에서 신부님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나이든 신자가 달려와 신부님의 빗자루를 빼앗으며 말씀 드렸습니다.

“신부님! 이런 것들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럴 시간에 강론 준비 더 해 주시고, 저희들을 위한 교육 준비 더 해 주십시오. 그것이 저희들을 위한 길입니다.”

그렇게 신부님께서는 그 본당에서 열정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였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번에 부임한 본당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신부님은 성당 마당에 휴지가 떨어져있던지, 풀이 나 있던지 신경도 안 쓰시는 것 같아. 성당에 계시면서 뭐 하시는지 몰라. 강론은 또 왜 그렇게 길어. 전 신부님은 몇 마디로 요약해서 간단하게 말씀하시까 좋더만. 또 뭔 교육이 그렇게 많아. 어휴…,저 신부님 언제 가시나…,”

 사도들은 기도했기에 말씀을 전할 수가 있었고, 또 말씀 봉사를 했기에 그 선포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로 믿음을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 봉사가 꼭 필요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② 가말리엘이 말한 “하느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 안에서,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찾아 볼 수 있을까요?



③ 우리 가운데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나는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4. 실천사항

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신앙의 기적을 만들어 보기.

②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 되기.

③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되기



5. 나의 결심







6.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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