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사도들의 삶

 

제 2과: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

(읽어야 할 말씀: 사도2,1 – 5,11)

1. 말씀읽기: 사도2,42-47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4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46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47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사도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내려오시자 사도들은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변화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당당하게 전합니다.



2.1. 성령강림(사도2,1-13)

① 교회의 탄생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지 3일 만에 부활하셨고, 부활 후 40일이 지나시어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성령께서 내려오시는데, 그 때가 바로 오순절입니다.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오순절 축제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1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사도2,1-3).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더 이상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이제 그들은 변화됩니다. 이 순간이 바로 교회의 탄생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지금 이 순간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며,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되는 시점. 이 순간을 교회의 탄생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수정된 순간부터 한 인격체로 존중을 받는데, 아이의 생일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온 시간을 생일로 정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교회가 세상에 소리를 터뜨리는 시간이니, 교회의 생일인 것입니다.



② 성령을 받은 제자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2,4).

 두려워서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게 되면 얼마나 기쁠까요? 말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입으로가 아니라 온 삶과 마음과 정성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에는 두려워서 말 못했던 것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있어야, 성령께서 이끄시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말은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할게요, 고맙습니다.”입니다. 입안에서만 맴돌 뿐, 용기가 없어서 고백하지 못하는 말들입니다. 기도하면 할 수 있는 말들이고, 성령께 나를 맡기면 할 수 있는 말들인 것입니다.


③ 일치를 주시는 성령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사도2,5-8)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담아주신 말은 다른 사람들을 일치시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말을 모두 자기네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 흩어졌던 인류의 언어가 성령을 통하여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십니다. 그들은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서로 놀라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편협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을 눈을 막고, 귀를 막고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판단을 하려면 옳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일치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 행동이 공동체의 일치를 가져온다면 나는 성령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내 행동이 공동체에 분열을 준다면 나는 성령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2.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사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과 자신들이 해야 될 말을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습니다. 자신들의 말로 알아듣고 놀라는 사람들과, 사도들이 술에 취했다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사도행전 2,14).



① 요엘 예언서 말씀의 성취

 베드로 사도는 자신들이 술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취하지 않았습니다.”(사도 2,15). 그러면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바로 요엘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7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날에 나의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을, 아래로 땅에서는 표징들을 일으키리니 곧 피와 불과 짙은 연기다. 20 그 크고 찬란한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둠으로, 달은 피로 바뀌리라. 21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 2,17-21)

 성령강림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서 모든 이들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희망을 바라보며, 놀라운 표징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사도들이 증언하고 있는 그 내용 자체가 바로 놀라운 표징들입니다.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던 이들이 두려움 없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각각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놀라운 표징인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들은 유다인들은 세례를 받을 텐데, 이 모든 말씀이 이루어짐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을 합니다.

–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사도 2,22).

–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사도 2,23).

–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4).

– 다윗은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사도2,29-32).

–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 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2,33).

–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2,36).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과 표징들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지만 유다인들이 하느님을 모독한다며 예수님을 못 박아 죽게 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고, 자신들이 바로 부활의 증인이며,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2.3. 개종한 첫 사람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37) 하고 묻게 됩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열성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박해했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늦게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메시아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사도 2,38-39).

 베드로 사도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개종한 사람들은 열심한  유다인들로서 하느님을 믿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2.4.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 성령을 가득히 받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당당하게 고백하게 된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① 두려움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두려움은 무서움이 아니라 경외심입니다. 그 두려움(경외심)이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도 그 믿음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게 만듭니다. 재산의 공동소유도 마찬가지입니다.



② 공동소유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습니다.



③ 바르나바의 모범과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죄

 바르나바는 초대교회의 거인으로 복음을 제일 먼저 진실하게 받아들인 인물들 중의 한 분이십니다.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1) 놓았다.”(사도4,36-37).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아직 모습도 갖추지 못하고 광신자라는 비난을 들을 때, 바르나바는 사도들의 말을 믿어 모든 것을 팔아버리고 완전히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격려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지혜롭고 낙관적인 온유한 성품이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그와 반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도 재산을 팔았지만 판 값의 일부를 떼어 놓고 나머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사도5,1-2). 그 땅을 팔기 전에도 자신들의 것이었고, 판 후에도 그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속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쩌자고 그대들은 서로 공모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는 것이오?”라는 질책을 받게 되고, 결국 그 죄 때문에 그 부부는 죽게 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제가 예비자일 때 그분이 교무금과 봉헌금에 대해서 교리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저는 그분이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세 후 그 분의 모습을 보니까 전혀 아니더군요.”봉헌금을 정리하다보면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충 주머니에 있는 구겨진 천 원짜리를 봉헌하는데, 그 속에는 고속도로 영수증도 있고, 싸우나 영수증도 있습니다. 또 아까워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하려고 구겨서 봉헌을 합니다. 그런 봉헌은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봉헌 방식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할머니들은 그 천 원짜리를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봉헌을 합니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처럼,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봉헌 하는 것. 그래서 함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믿는 이들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색하게 천 원짜리 한두 장 봉헌함에 바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정성이 담기지 않고 형식적으로 그렇게 바치는 교무금이 아니라, 정성이 담겨 있는 것을 바치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교무금을 많이 내거나, 봉헌금을 많이 내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내기 싫은데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봉헌하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시간 지나면 오를 테니 조금만 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본다면 초대교회의 공동생활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④ 빵을 떼어 나누는 일(성찬례)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토요일 저녁마다 함께 모여서 미사를 봉헌했는데 그것을 “빵 나눔”이라고 불렀습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2)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에로 초대해야 하겠습니다.



2.5. 베드로가 불구자를 고치다(사도3,1-10).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못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사도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소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 능력은 더 크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믿음의 힘으로 불구자를 치유합니다.



① 자선을 청하는 불구자(사도3,1-3)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 열시와 오후 세시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바쳤습니다(다니9,21;유딧9,1).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세시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사람들에 의해 들려 왔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문’이란 명칭은 오직 여기에서만 나오기에 그 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3) 

 그 불구자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불구자(앉은뱅이)의 처지는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의해 더욱 초라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② 베드로 사도의 치유(사도3,4-10)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불구자는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사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3,6)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온 백성은 불구자였던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습니다.



 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대할 수 있음은 내가 말씀 안에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상대방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음 또한 내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야 가능한 것입니다.



2.6. 베드로가 솔로몬 주랑에서 설교하다.

 치유 받은 그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던 백성들은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백성을 보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사도3,12).

 베드로 사도는 너무도 겸손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자랑할 만도 하고, 교만할 만도 할 텐데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이렇게 설교를 합니다.



①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사도3,13).



   베드로 사도는 지금 앉은뱅이의 치유를 목격한 유다인들이 바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부른 까닭은 예수님의 일생이 제2이사야서(이사40-55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②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3,15).



   생명의 영도자는 죽은 이들의 부활에 있어서 첫째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을 영생에로 인도하는 분이시기에 생명의 영도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요, 진리시기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다는 것과, 하지만 그분께서는 부활하셨고, 자신들이 바로 그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③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사도3,16).



   베드로 사도는 자신들이 바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앉은뱅이의 치유도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가 바로 무지한 탓에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았다면 유다인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무딘 마음이, 회심 없는 마음이 예수님을 못 알아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④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사도3,19-21)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를 용서받으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기를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선 사람과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의 삶은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편에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다르듯이, 살기를 원한다면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릴 것이 아니라, 시냇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제때에 열매를 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로 생기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으면서 준비되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재림). 예수님께서 아직 재림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믿음을 드려야 하는 이유를 모세의 입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사도3,22-23).



  이 말씀은 신명기 18장 15-18절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신명기18,15.18).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인성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십니다. 이 신명기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8장 19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신명기18,19).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영원한 생명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⑥ 베드로 사도는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다고 말하면서 계약의 자손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들의 신원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사도3,25).



   유다인들은 바로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고, 하느님께서는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을 성실히 지키시며, 자손 대대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어 먼저 유다인들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비록 어리석음 때문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그 복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7. 베드로와 요한이 최고 의회에서 증언하다

 앉은뱅이를 치유하고 몰려든 군중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백성을 가르치던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는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사도들은 위험인물 이었고,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거 하면, 자연히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들의 활동을 들었고, 사도들의 활동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사도들은 최고의회에서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① 감옥에 갇힌 베드로와 요한(사도4,1-4)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들은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사도4,4).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였던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치는 것을 본 유다인들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장정만도 오천 명 가량 되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 그들은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믿음의 힘을 체험했고, 예수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미리 예고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잡혀갔을 때,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지 말라던 예수님의 말씀도 떠올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아이가 무서워하거나 어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신앙인들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불신에서 나옵니다.



②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도들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습니다.4)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사도4,7).


 백성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심문을 하였습니다. “당신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심문의 내용은 사도들을 무시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고쳤는데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하였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4,8-12)



 백성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거만하게 질문을 했지만 오히려 베드로 사도에게 배우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이제 심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의 치유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구원받은 데에 필요한 이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증언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집짓는 이들) 집(하느님 나라)을 짓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유다인들에게 버림 받은 돌)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시고, 그 하느님 나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만나기에 예수님을 중심으로(그 머릿돌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③ 최고의회의 판결

  최고의회의 구성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눈으로 보여 지기에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사도4,15-16)

 최고의회에서 두 사람을 쫓아 낸 후 그들은 대책회의를 하였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표징이 있으니(앉은뱅이의 치유), 그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백성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믿지 않고 사도들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왜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나도 나의 잘못을 덮기 위해 다른 이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④ 베드로 사도의 대답

 백성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4,18-19)

 참으로 멋진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스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멋진 변화입니다. 대사제의 하녀가 “당신도 예수님의 제자이지요?”라면서 물었을 때, 즉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그 하녀의 주인 앞에서 더 나아가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신들이 우리를 박해한다 하더라도”가 빠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자기 목숨을 살리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 다시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켜 놓습니다.



⑤ 풀려나는 사도들

 백성의 지도자들은 백성 때문에 사도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치유한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치유의 표징이 일어난 이는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즉 마흔이 넘도록 그렇게 불구로 살아온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켰으니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2.8. 공동체가 하느님께 기도하다.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듣고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기도를 합니다.“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사도4,29-30) 이렇게 기도를 마친 신자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공동체에 일치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가정에 일치를 주고 있습니까? 직장과 성당에 일치를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편을 갈라서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②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백하듯이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한 모든 일 안에서 나는 예수님을 보여 드려야 하고, 겸손하게 예수님께 영광을 드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예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③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유다인들에게 증거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증거 해야 할까요?



4. 실천사항

① 베드로 사도와 같이 성령이 충만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② 바르나바와 같이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기.

③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와 같이 욕심 부리는 내 모습 발견하고 바꾸기.

④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나의 신앙을 증거 하기.





5. 나의 결심





6.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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