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과: 바오로 사도의 2차 전교 여행

 

제 9과: 예루살렘 사도회의

(읽어야 할 말씀: 사도15,1-15,35)

1. 말씀읽기: 사도15,1-20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의 보수적인 유다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유다교의 관습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또 관심도 없는 그리스도교인(이방인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키아로 내려온 몇몇 유다인들이 모세가 명한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고,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이들과 맞서면서 안티오키아 공동체 안에서는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해결하게 됩니다.



2.1. 분란의 발생

 안티오키아 교회는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유다에서 몇몇 사람이 이 도시로 와서 이방계 신자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의견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까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방계 그리스도교 신자들1)에게 유대 율법이나 할례 준수를 요구하지 않았고, 또 그곳 신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계 신자들2)은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주장에 대부분 이방계 신자들인 안티오키아 교회는 당황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지킴으로써(율법을 지키는 행동)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됨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유대 율법 준수를 요구함으로써 생길 이방인 선교의 어려움을 내다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르나바, 티토(갈라2,1) 및 몇몇 사람을 대동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 지도자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합니다. 사도단과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 교회 역사상의 첫 모임을 사도공의회라고 합니다. 최초의 공의회는 개종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3)



2.2. 예루살렘 공의회(사도회의)

 이 회의에서 유대계 신자들은 율법 준수를 고집하였으나 베드로를 중심으로 바오로, 바르나바의 설득과 야고보의 타협안이 통과되어 결국 바오로의 의견대로 해결되었습니다. 이방계 신자들은 할례 및 모세 율법 준수의 의무가 없는 반면 유대계 신자들은 이를 지켜야 된다는 것과 양쪽 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나 목 졸라 죽인 짐승이나 피를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사도15,22-29).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사도들과 원로들의 이름으로 된 편지를 통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및 그곳 대표들의 손으로 안티오키아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회의로써 그리스도교가 유대교 종파로 되는 것을 방지하였는데 여기에는 누구보다도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공이 컸습니다.4)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은 이방인들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입니다. 이런 고기는 제사 때에 먹었지만 장터에 내다 팔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식사할 때 먹게 될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거짓 신들에게 바쳤던 이 고기는 유다 사람들이 볼 때 부정한 것이었고, 그것을 먹는 사람도 같이 부정해지고, 우상숭배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태오 15,11)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상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행동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 마음으로 죄를 짓고, 결국 신앙을 잃게 만든다면 차라리 안 먹는 것이 교회 공동체에 유익합니다.



 유다인들은 목숨 걸고 지킨 것이기에,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려면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개고기를 안 먹는 프랑스인 친구를 둔 한국 사람이 점심으로 개고기를 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②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구약성경에서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자리인 피는 오로지 그분께만 유보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피를 먹지 못했습니다(레위기 17,10-12.14). 피를 먹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경죄와 하느님께만 속하는 다른 존재의 생명력을, 이를테면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을 뜻합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는 것은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였고, 그 짐승은 하느님께 바쳐지는 희생제물 이었습니다(레위기17,5-7). 그리고 피는 아무렇게나 흘려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잡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성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냥하여 잡은 것으로 희생 제물로는 적합하지 않은 동물의 피는 의식을 갖추어 땅에 흘려보낸 다음, 흙으로 덮어야 했습니다(레위기 17,1 3). 목 졸라 죽인 짐승의 몸 안에는 피가 들어 있기 때문에 금기시했습니다(레위 17,1-16). 그래서 유대인들은 짐승을 잡을 때는 아예 목을 자르거나 또는 멱을 딴 다음에 거꾸로 천정에 메어 달았습니다.


 처음의 이 규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남의 천막 주변에 자리를 잡은 진영 안에 모여 살았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퍼져서 살다보니 이 규정들은 그대로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12,13- 28) 성소에서 바쳐지는 희생제사와 음식으로 먹기 위하여 짐승을 잡는 것을 구분하게 됩니다. 물론 이때도 피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는 생명이고 속죄예식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습니다. 짐승을 잡아 속죄 제사를 바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 곧 생명 그 자체를 제단 또는 속죄판과 접촉시킴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과 죄를 지은 인간 사이에 생명의 통교가 복구되었습니다. 그 피가 바로 죄를 씻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피는 더 이상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구원되었기에 더 이상 동물의 피를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 중에 떨어져 구원에서 멀어지게 되면 고백성사를 통해서 다시 내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또 생명을 부여 받는 것도 예수님의 거룩한 성체를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기에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피는 더 이상 아무런 권한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피는 생명을 상징 하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생명을 주셨기에 남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명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례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5)


③ 불륜

 불륜(不倫)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근친상간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는 근친들 사이에도 혼인을 하였으나, 모세의 율법에도 같은 핏줄간의 결혼을 금지하였습니다(레위18장). 가나안은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동성애와(창세19,4-9) 어쩌면 수간6)까지도 포함하여 음탕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간통, 간음등도 그리스도교 밖에서도 금지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부부는 한 몸이기에 부인의 몸을 범하는 것은 바로 남편의 몸을 범하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3. 신자들이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통해서 유다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서 최소한 서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규정을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신자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규정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인이라면, 주일을 지키고,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이라면, 반모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 정도는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① 신자들이 해야 되는 것

 신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해야 합니다. 성경이나 성가책은 반드시 가지고 와야 하고, 미사에 올 때는 독서와 복음은 읽어 보고 와야 합니다. 성당에 올 때는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와야 하며,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기도하고, 성경을 찾아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또 성당에 들어올 때는 조용히 들어오고, 성당에서 소곤소곤 떠들며 얘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미사의 모든 예절이 끝나기 전에 가방 챙기지 않아야 하고,  옆 사람에게 분심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성당을 자랑해야 합니다. 천주교의 좋은 점들을 적극적으로 자랑할 때(따뜻하게 맞이하는 형제자매들, 기도 분위기, 영성체, 고백성사, 봉사, 장례예식, 평화, 기쁨 등) 비신자들은 천주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고, 신자들은 그들의 칭찬에 더욱 열심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랑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제자매의 부족한 얘기를 들어도 그 말을 전하지 않고, 또 동조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사제나 수도자, 형제자매들을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은 장례가 나면 가서 연도를 바치고, 가능하면 장례미사까지 참례해야 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고, 내가 그렇게 기도해 줄 때, 죽은 이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다. 또한 나와 나의 가족이 장례를 당하면 신자들이 와서 장례를 치러주고, 기도해주고, 위로해 줍니다.



 신앙인들은 인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옆에 있는 사람과도 먼저 인사를 하고, 그 주일에 성당에 나오지 않는 사람과도 왜 성당에 못 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인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인사하면 그가 바뀌고, 그의 바뀜을 통해서 내가 바뀌게 됩니다. 또 성당 안에서만 인사하지 말고, 성당 밖에 나가서도 인사하고, 다른 곳에서 만나도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하는 사람들은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끼리끼리 모여서 인사하지 않습니다. 또 마음에 안 든다고 인사하는 사람을 외면하지도 않고, 상대방인 먼저 인사를 하면 더욱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은 짜증나는 말을 하지 않고, 불평을 공공연하게 하지 않습니다.


 또 인사할 때는 웃는 얼굴로 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웃고, 기뻐도 웃고, 좋아도 웃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참으로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기쁘게 인사하는 나 자신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웃는 나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바꾸고, 나의 얼굴을 바꾸고, 나의 건강을 바꾸고, 그리고 나의 영생까지도 바꿔 줍니다.


 신앙인은 봉헌과 교무금을 정성스럽게 봉헌합니다. 신자들의 봉헌과 교무금으로 교회가 유지되기에 마음을 다해서 봉헌해야 합니다. 주먹 쥐고, 그 안에 천 원짜리 구겨서 넣는 사람들. 자신의 마음도 구겨진다는 것을 신앙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뭐 했다는 사람들도 봉헌금이나 교무금은 형식적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행동한다. 내 것을 기쁘게 봉헌하지 못하는 사람은 봉사도 형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는 것이 돈 얘기입니다.7) 마음이 바뀌어야만 되고, 열정이 있어야만 됩니다. 즉 신앙인이어야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고백성사를 잘 봅니다. 가톨릭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고백성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고, 용서받았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백성사 때문에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형식적인 고백성사는 나의 영적 성장을 망칩니다. 성찰과 통회 없는 고백성사는 “주일 빠졌습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이런 식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고백의 기쁨과 은총은 성찰과 통회와 정개를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성사를 보는 이는 판공 때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거나, 고백성사 때문에 성당에서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나도 시간만 있으면 봉사 열심히 할 텐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봉사하는 사람 중에 바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만들어서 봉사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 봉사가 더 값어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삶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뜨거움은 나의 손과 발, 내 가슴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것이 바로 봉사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쁜 것. 그것이 참된 봉사입니다. 입으로만 봉사하지 말고, 봉사하는 사람들 칭찬해 주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하고 겸손하게 말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신앙인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성경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은 성경에 맛들인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신앙서적을 함께 읽으면서 신앙인처럼 생각하고, 신앙인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할 때 어느 순간 성경은 내 손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열심히 복음말씀을 공부하고 익혀서 많이 묵상하고, 하느님 말씀 안에서 생활하도록 끊임없는 노력하는 사람. 그가 바로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은 비신자들이 하고 있는 의로움은 넘어서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고, 존경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반모임에 참례해서는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리고, 혼자 잘난 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협조하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은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② 신자들이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자신의 무딘 마음과 완고함) 저울질하고 깎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시기와 질투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냉담을 할 때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큰 시련이 주어져서 냉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조용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께 죄임을 알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누구를 핑계 삼아서 냉담을 하는 사람들은 냉담을 하면서도 본당 일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또 냉담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와서 성사보고 뻔뻔하게 영성체를 할 것이 아니라 예비자 교리반에라도 들어가 교리를 다시 배우고, 재무장해야 합니다.

 비신자들에게는 열심한 신자인척 하면서 성당에서는 얼굴보기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구역에서는 반모임이나 구역 일에 전혀 협조하지 않으면서 성당에서는 생색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뭔가를 하자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본인은 무척 멋진 신앙인인척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내가 왕년에 뭐 했다고 말하지만 육체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쏙~ 빠지는 사람(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이 있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잇속만 챙기고 핑계를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 많은 사람 중에 열심한 신앙인은 별로 없습니다.



2.4. 기뻐하는 안티오키아 공동체

 사도들과 원로들은 사도회의의 결과를 편지로 보냈습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사도15,28-29)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습니다. 이제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할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분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기본적인 것만 지키면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중에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다면 벗어 던져 버려야 합니다. 내가 속한 단체가 복음적이지 않다면 그 단체를 바꾸던지, 바뀌지 않는다면 나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금육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금요일에 고기를 안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먹고 싶은 것을 절제할 수 있고, 극기한 것을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제와 봉헌이 없는 금육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본질적인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본질적인 것 때문에 기뻐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만일 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사도회의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유다인들의 입장에서도 이야기해 봅시다.



② 신앙인들이 어울려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③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내 기쁨을 앗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실천사항

① 지켜야 할 것은 지키기.

② 본질적인 것에 마음 쓰기.

③ 공동체와 일치하기



5. 나의 결심







6.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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