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과: 바오로 사도의 2차 전교 여행
(읽어야 할 말씀: 사도15,36-18,22)
1. 말씀읽기: 사도15,36-41
36 며칠 뒤에 바오로가 바르나바에게, “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런데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다. 38 그러나 바오로는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나 함께 일하러 다니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39 그리하여 그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 40 바오로는 실라스를 선택하여 떠났는데, 형제들은 바오로를 주님의 은총에 맡긴다고 기도해 주었다. 41 그는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두루 다니며 그곳 교회들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바오로 사도는 2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바르나바와 결별을 하게 됩니다. “내가 만일 바르나바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만일 바오로 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가지고도 당신의 완전함을 만들어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오로 사도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바르나바는 자신의 사명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물러납니다. 이제 바오로는 두 번째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 여정은 ①시리아의 안티오키아 ②데르베 ③리스트라 ④이코이온 ⑤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 ⑥트로아스 ⑦네아폴리스 ⑧필립비 ⑨데살로니카 ⑩베로이아 ⑪아테네 ⑫코린토 ⑬에페소 ⑭카이사리아 ⑮시리아의 안티오키아가 됩니다.
2차 전도여행의 특징으로는 필립비 등 마케도니아를 방문함으로써 유럽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사실과 그곳 마케도니아의 여러 지방에서의 선교활동이 비록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는 받았다 할지라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것과 또 아테네의 아레오파고 법정에서의 그 유명한 설교는 그것이 비록 희랍의 문화와 지혜에 깊이 침투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매우 의미가 깊다는 사실입니다.
2.1. 바르나바와의 결별
바오로는 바르나바에게, “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선교의 주도권은 바르나바가 아니라 바오로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나 함께 일하러 다니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지게 됩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고, 바오로는 실라스를 선택하여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① 바르나바와 바오로
바르나바는 초대교회의 거인으로 복음을 제일 먼저 진실하게 받아들인 인물들 중의 한 분이십니다. 아마 바르나바는 주님을 만나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바르나바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믿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버린 첫 그룹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아직 모습도 갖추지 못하고 광신자라는 비난을 들을 때, 바르나바는 사도들의 말을 믿어 모든 것을 팔아버리고 완전히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편이 된 것입니다.1) 그래서 “격려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지혜롭고 낙관적인 온유한 성품이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르나바의 노력과 그의 모습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인도 되었습니다.
② 바오로에게 있어서의 바르나바
바오로에게 있어서 바르나바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나니아스의 도움으로 교회 안에 받아들여지는 첫걸음을 했으나 그 이후의 것들은 모두 바르나바 덕분이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그가 참된 회심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바르나바가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티오키아에서 타르수스에 있는 바오로를 먼저 찾아간 사람도 바르나바였습니다. 바르나바는 바오로를 이해해주고 바오로의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바오로의 친구, 영적 아버지, 사목 활동에 있어서의 스승, 사도직 활동으로 이끌어준 인도자인 것입니다. 바르나바를 통해 바오로는 멋진 사목의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③ 요한 마르코 문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협력자 문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사촌(콜로새 4,10)인 요한 마르코3)를 좋게 생각했지만, 바오로는 선교여행 도중에 그들을 떠난 요한 마르코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떠난 사람은 또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르나바는 인척관계이기에 요한 마르코를 변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게 됩니다. 이것은 바오로에게도 상처를 주고, 바르나바에게도 상처를 주고, 또 요한 마르코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이것을 계기로 바르나바는 성경에서 사라지게 됩니다.4)
바르나바는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신앙의 스승이요,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젊은 혈기의 바오로 사도에게는 요한 마르코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5)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을 후회하게 되었을 것이고, 1코린토 13장의 사랑에 관한6)의 내용을 통해서 본다면 바오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바르나바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야말로 바르나바와의 언쟁에서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던 장본인임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거인이었던 바르나바는 이때부터 자신에 대한 흔적을 아무 곳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기에 끝까지 자신의 일을 했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형제자매들과 다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임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늘 잘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본질적인 것이 아닐 때는 물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때,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그랬듯이 그런 일은 우리 안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2.2. 선교여행 중에…,
① 리스트라에서 티모테오를 데리고 가다.
바오로는 리스트라에서 티모테오라는 제자와 함께 선교여행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티모테오7)는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지방의 유대인들이 바오로가 조상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습니다.
② 마케도니아에 관한 환시를 보다.
바오로를 이끄시는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가야하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바오로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정하십니다.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사도16,9) 하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는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③ 필리피에서 리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이다.
필리피는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습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은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가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였습니다.
2.3. 바오로와 실라스가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다.
① 점 귀신 들린 하녀의 구마
바오로 사도 일행은 점 귀신 들린 하녀 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바오로 일행을 쫓아오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금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사도16,17)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 날을 두고 그렇게 하는 바람에 언짢아진 바오로가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하니 그 여자에게서 나가라.”(사도16,18) 하고 말하니 그 순간에 귀신이 나갔습니다.
② 하녀 주인들의 복수
그런데 그 여자의 주인들은 돈벌이할 희망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바오로와 실라스를 붙잡아 광장으로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행정관들 앞에 데려다 놓고 “이 사람들은 유다인인데 우리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21 우리 로마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습니다.”(사도16,20-21) 하고 모함을 했고, 군중도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했습니다.
하녀의 주인은 하녀를 사랑했다면 점 귀신이 나간 것에 대해서 바오로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하녀를 통해 돈을 벌고 있었으니 하녀를 돈을 벌어주는 도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것은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이용하기 위해 그와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들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함께 해야 합니다.
③ 감옥에 갇히는 바오로와 실라스
모함과 군중들의 공격을 보고, 행정관들은 바오로와 실라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행정관들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고 약자를 억압했습니다. 옳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무리 다수라 할지라도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행정관들은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습니다.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게 억울하게 몰매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며 기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④ 기적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고,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사도16,28)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간수는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16,30) 하고 물었습니다. 바오로 일행은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16,31)라고 말했습니다.
간수는 바오로 일행을 집으로 데리고 가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은 신앙생활 하면서 좀더 깊은 신앙을 갖기 위해 마음을 먹습니다. 많은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간수는 구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바오로 사도의 말에 따라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 또한 결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결심만 하고, 행동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비록 이렇지만 마음만은 늘 성당에 가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⑤ 풀려나는 바오로와 실라스
날이 밝자 행정관들은 시종들을 보내어, “그 사람들을 풀어 주어라.”8)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그들에게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은 채 공공연히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슬그머니 내보내겠다는 말입니까? 안 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사도16,37)라고 말하자 행정관들은 바오로 일행에게 사과9)를 하고, 그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지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멋진 모습입니다. 비록 억울하게 박해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우선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사소한 감정 때문에 본질적인 것과 중요한 것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바오로 일행은 리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격려해 주고 다음 선교지를 향해 떠나갔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머물려 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우리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기쁘게 봉사해 봅시다.
2.4. 테살로니카에서 선교하다.
테살로니카에 이르러 바오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습니다. 그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신 다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음을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십니다.”(사도17,3)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감복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르게 되었고,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① 유다인들의 횡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유다인들이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데려다가 군중을 선동하게 하여 그 도시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야손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들은 야손의 집으로 몰려가 바오로 일행을 백성 앞으로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손의 집에서 바오로 일행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몇몇 형제를 시 당국자들에게 끌고 가서 외쳐 댔습니다.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야손이 그자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습니다. 그자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들을 어기고 있습니다.” 라고 모함을 하며 군중과 시 당국자들을 자극하였습니다.10)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눈과 귀가 감겨서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② 신자들의 횡포
성당에서 보면 열심 하지 못한 신자들도 많은 횡포를 부립니다. 야손이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맞아들이는 선행을 했는데 칭찬받지 못한 것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이들을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게 상처를 주어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당에서 성모회장을 새로 임명했습니다. 그분은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이었고, 본당 것을 함부로 가져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봉사했던 사람들은‘네가 언제까지 하나 보자!’하며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행사를 하고 나면 양념까지도 챙겨갔지만 새 회장이 봉사를 하면서 행사를 하면 할수록 많은 것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열심한 사람을 칭찬해 주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겉모습만 신자인 사람들은 결코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로 성당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5. 베로이아에서 선교하다.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꼭 문제를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바오로와 실라스는 유다인들을 피해 베로이아로 가게 됩니다. 그들은 그곳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곳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은 바오로가 베로이아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을 알고, 그곳까지 가서 군중을 선동하고 자극하였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바오로는 아테네로 떠났고, 실라스와 티모테오는 그곳에 남았습니다.
2.6. 아테네에서 선교하다.
바오로는 아테네에서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기다리는 동안, 그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격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과 토론하고, 또 날마다 광장에 나가 그 곳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하였습니다.
① 아테네 선교
바오로와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바오로를 아레오파고스로 데리고 가서 “당신이 말하는 그 새로운 가르침을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겠소?”하며 자세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아테네사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먼저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심을 칭찬하면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의 주인공을 하느님으로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라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에 모두 회개해야 함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② 아테네 시민들의 반응
그런데 아테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7. 코린토에서 선교하다.
① 일하면서 선교하는 바오로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아퀼라11)와 프리스킬라를 만나게 됩니다.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습니다.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아마도 마케도니아에서 선교 헌금을 가져옴으로써 바오로가 일손을 멈추고 선교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 하고 그들에게서 돌아섰습니다. 바오로 자신도 유다인이었기에 이 기쁜 소식을 유다인들에게 먼저 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옷의 먼지를 털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게 됩니다.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② 환시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사도18,9-10) 이 환시가 없었다면 바오로 사도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③ 박해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모함하였습니다. 하지만 갈리오는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12)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사도18,14-15) 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유다인들은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2.8.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다.
바오로는 한동안 코린토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습니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13)
또 에페소에도 회당으로 가서 유다인들과 토론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오로에게 좀 더 오래 머물기를 청하였지만 그는 승낙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작별 인사를 한 뒤,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나 카이사리아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갔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만일 바르나바였다면 바오로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그냥 그렇게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까요?
② 감옥에 갇혀서도 하느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는 바오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련이 주어졌을 때 내가 하느님께 드리는 태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봅시다.
③ 아테네 시민들의 반응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4. 실천사항
①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결별을 바라보면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 주기.”
② 어떤 처지에 있던지 신앙을 잃지 않고, 늘 기도하며 감사하기.
③ 귀신 들린 하녀의 구마를 기뻐하지 않은 주인의 악한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성찰하고, 내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 주기.
5. 나의 결심
6. 말씀으로 기도하기
